세상사 이야기

최고의 음향을 가진 세종문화회관에 대한 단상

허당수 2023. 2. 3. 09:21

1978년 개관 당시 모습

 1978년(4월 14일 개관) 광화문 한복판에 세워진 세종문화회관이 있다. 1972년 화재로 소실된 시민회관을 대치하는 것으로 건립된 것이다. 개관 당시 규모는 3층 객석 3,822석(현 3,022석)으로 대단한 규모이며 국내 최대이다. 여기에 귀빈석(현재 없앰)까지 하면 무려 4,000석까지 늘어난다. 건물은 대강당, 소강당, 대회의실 그리고 당시 동양 최대 규모가 파이프오르간까지 갖춘 다목적홀로 그 위용을 자랑한다. 특히 대강당 전면의 여섯 개의 웅장한 석조 기둥과 양쪽의 부조가 압도적이다. 더불어 두 건물 사이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쓴 휘호 "문화예술의 전당"이라는 비석이 지금도 건재하다.

 원래 국가적 행사를 위해 건립되었지만 그 활용이 제한적이라 주목적은 음악용이다. 1973년 아바도가 빈 필하모닉을 이끌고 내한 적이 있다. 당시 시민회관이 불타 이대강당에서 연주를 하였는데 아바도의 회고에 의하면 비포장 도로를 통해 도착한 홀은 연주회 도중 신촌역으로 가는 기차 소리가 들리는 등 최악의 조건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연주 역시 시원치 않았고.

 1989년 아바도는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도 등극하게 된다. 그래서 일본 공연 당시 국내 기자가 이제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다시 한국에 공연을 와야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거절에 가까운 뜻을 보인다. 왜냐? 73년도의 한국 공연에 대한 안 좋은 추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한 번도 한국을 다시 다녀가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21년 동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 래틀이 상임지휘자로 되기 전까지. 래틀은 2005년부터 무려 다섯 번(단골?)이나 내한 공연을 갖은 바 있다. 

 여담이지만 피아니스트 폴리니가 국내 인기가 최고조에 이르는 1980, 90년대 내한 공연을 오지 않았다. 그래서 말들이 많았다. 왜 안 오냐? 심지어는 공산당이라서 안 온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여기서 개인적 사견 내지 소설을 써 본다. 그는 동향인 아바도에게 물었을 것이다. 한국에 갔던 인상을? 대답은 간단하다. 형편없어! 가지 마. 결국 폴리니는 한국에 오지 않았고 결국 여든이 넘은 2023년에야 다 늙어서 한국 공연을 오게 된다.(이 공연도 건강 문제로 무산된다)

 1978년 세종문화회관은 개관기념 축제를 성대하게 열었고 기라성 같은 외국의 유명 악단을 접하게 되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 먼저 4월 30일에 NHK 교향악단과 볼프강 자발리쉬가 내한했고, 5월 27, 28일에는 유진 오먼디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두 가지나 존재한다. 오먼디는 세종문화회관의 규모에 놀랐는데 특히 3층(실제는 5층) 객석 끝까지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난색을 표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관계자는 오먼디에게 직접 3층 객석에서 소리를 들어 보라고 권했고 오먼디는 만족하여 연주를 진행했다고 한다. 결국 세계적인 거장에 의해 음향이 좋다는 검증을 받은 셈이다. 이에 오먼디는 1981년 다시 내한(무려 3회 공연 그의 나이 여든두 살)하였고 그 내한의 이유를 소리가 좋은 세종문화회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기자 회견에서도 밝힌 바 있다. 다른 하나의 일화는 애국가 연주 문제다. 당시 공연을 할 때 제일 먼저 연주되는 것은 연주곡목의 첫 곡이 아닌 애국가와 그 나라의 국가였다. 독재의 잔재인. 그래서 관계자는 애국가 악보를 오먼디에게 전달했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관계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연습의 맨 마지막에 딱 한 번 연습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연주가 이루어졌는데 기가 막히게 훌륭한 연주였다고 한다. 열악한 국내 오케스트라에 의한 것만 듣던 우리에게는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이에 관계자는 몰래 이 연주를 녹음하였고 이를 TV 시작과 끝에 나오는 애국가로 한동안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한편 1984년에는 지휘자의 제왕인 카라얀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최초의 내한 공연이 있었고 카라얀은 세종문화회관의 연주가 흡족하여 다시 자기를 불러주면 오겠다는 말까지 남기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를 지키지 못하고 1989년 타계하고 만다. 카라얀 역시 세종문화회관에 만족했던 셈이다.

 이제 세종문화회관의 음향 문제이다. 사실 개관 초기부터 이 홀은 전용 음악홀이 아니라서 음향이 좋지 못하다는 말이 많았다. 특히 무대는 고정식이 아닌 가변식으로 매우 넓은 공간이라 오케스트라 연주 시 따로 칸막이가 설치된다. 음향이 좋지 않다는 것은 잔향이 부족하여 소리가 작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냥 다목적홀을 지은 것치고는 음향이 생각보다 좋다는 평도 있었다. 하긴 건립 당시인 1978년 우리나라에 오케스트라 홀을 위한 전문 음향 기술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소가 뒤걸음 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로 소리가 작고 답답하였을까? 맞다 하지만 여기에는 특별한 조건이 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나 베를린 필하모닉과 같은 최고의 오케스트라에게는 이런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는 것이다. 소리가 크다는 것과 울림이 좋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소리가 작아도 울림이 좋으면 먼 곳까지 소리를 전달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며 거장 지휘자들은 이런 것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인물들이다. 그러기에 오먼디는 소리가 만족하여 재공연을 왔던 것이다. 이는 엄연한 사실이지만 다들 아는 이가 드물다.

 1988년 서초동 우면산 아래에 예술의 전당이 문을 연다. 당시 그곳은 외진 곳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누가 이런 곳에 음악당을 지었느냐고 불평을 하였다. 또한 초기 음향에 문제가 많았는데 목욕탕과 같이 왕왕 울리는 소리가 큰 문제였다. 이에 전당에서는 부랴부랴 객석 통로에 카펫을 까는 궁여지책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원래 내장재는 설계자의 의도대로 목재였다. 하지만 비용 문제인지는 몰라도 콘크리트 마감에 비닐 시트지로 마감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엽기 수준이다. 하지만 이를 하는 이는 드물다. 나중에 보수 공사는 들뜨는 시트지를 재시공하는 공사였다. 못 믿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가서 실제로 벽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예술의 전당은 음향은 좋지 않으며 개인적으로는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내장재를 원래 의도대로 모두 교체한다면 모를까.

 나는 1984년 카라얀 공연을 직접 3층에서 관람했던 사람이다. 소리는? 내가 듣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엄청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카라얀의 지휘 필치를 느끼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카라얀 스스로도 다시 오겠다고 할 만큼. 다음으로는 1990년 테미리카노프가 이끄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최초 내한 공연이다. 당시 나는 3층 끝에서 관람을 하였다. 하지만 그 음향에 충격을 먹게 된다. 특히 클라리넷 독주가 내 귓가에서 생생하게 울리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비창 교향곡의 강렬한 음향은 세종문화회관 전체를 울리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였다. 누가 세종문화회관 소리가 나쁘다고 하는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제대로 울리는 명오케스트라 소리를. 이것이 내가 들은 세종문화회관 최고의 소리로 남아 있다. 혹시 예술의 전당 소리가 좋고 세종문화회관 소리가 나쁘다고 하는 이들은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르는 막귀다. 벙벙 울리는 목욕탕 소리보다는 벙벙 울리지는 않지만 섬세하게 울리는 적막한 음향의 소리가 실은 좋은 소리인 것이다. 물론 답답하지도 않다. 소리가 잘 들리니. 목소리만 크다고 훌륭한 성악가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의 사적인 결론은 이렇다. 세종문화회관은 소리가 답답하고 잔향이 적은 것은 맞다. 하지만 이들 뚫고 소리를 낼 수 있는 연주단체와 연주자 즉 대가들에게는 최적의 홀인 것이다. 오먼디의 경우처럼. 하지만 소리의 울림이 빈약한 연주자들에게는 최악의 홀이 되는 것이다. 나는 1984, 85년 당시 KBS 교향악단과 서울시립 교향악단 정기 연주회를 매회 빠지지 않고 다닌 적이 있다. 어림잡아 아마 50~80회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연주도 소리도 열악했다. 왜냐하면 당시 그들의 연주 실력이 좋지 않았기에. 그래서 나는 텅텅 빈 홀의 1층 맨 앞줄 정중앙에서 듣곤 했는데 소리는 좋았다. 맨 앞이므로. 물론 다른 자리도 마음대로 섭렵하는 혜택을 누렸지만 결코 소리가 나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시끄러운 도심에서 느끼는 정숙하고 조용한 홀의 소리가 너무도 좋기만 했다. 상상해 보라 광화문 한복판에서 세종문화회관 내부에 들어섰을 때의 그 고요함을.

 이제는 2000년대이다. 기술의 많이 좋아졌다. 아니 장비가 좋아졌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의 생각 능력은 퇴보하고. 롯데콘서트 홀이라는 것이 생겼다. 나는 껌 팔아 만들 것이라 빈정된다. 이 홀은 객석 뒤편에 스피커를 달아서 실연의 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하는 기술을 적용하였다고 한다. 래틀이 칭찬했다고 하는. 뭐야 실연을 들으러 갔더니 스피커 소리네? 우리는 세계적인 연주가의 음악을 평소에는 음반으로 듣다가 실제 연주를 들으러 공연장에 가는 것이다. 스피커로 듣는다면 집에서 자신의 좋은 오디오로 듣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예술의 전당도 심지어 세종문화회관도 이런 꼼수를 쓴다고 하니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안 들리면 안 들리는 것이 정상이다. 안 들린다고 스피커를 쓰면 그것은 실연이 소리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대중음악이면 몰라도.

 광화문 대로에서 보이는 세종문화회관의 위용을 보라, 하지만 우면산 기슭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는 건물의 위용이 보이질 않는다. 보려면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람은 건물을 만들고 건축물은 다시 사람을 만드는 법이다. 카라얀과 오먼디가 본 4천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들은 매우 놀라고 또 만족하였을 것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소리가 나쁘다고 하는 것은 오먼디가 막귀라고 하는 것이라 다름없다.

 사족, 세종문화회관의 대대적 재보수가 알려지는데 외관에 대형 화면을 설치한다고 한다. 밖에서도 볼 수 있게~ 또다시 할 말을 잃게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진정 무엇이 좋은 지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미래는 없다.

 

 

 

 

'세상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승옥 소설 전집  (1) 2023.04.25
『불후의 클래식』 표지 그림 <첼리스트>  (0) 2023.04.25
판 닦는 솔  (0) 2022.12.10
이런 지혜를 얻고 싶다.  (0) 2022.05.28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0) 202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