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LP 시절의 이야기이다. 1984년이니 대학교 시절로 당시는 LP가 주류를 이루던 때였다. 판을 들을 때면 정전기로 인한 먼지가 늘 성가신 존재였다. 그래서 솔을 이용하여 닦아내곤 하였다. 당시 내 집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우단이라고 하는 벨벳 재질의 솔이 있어 왔다. 상표는 영풍(?)이라고 적혀 있는데 짐작건데 1970년대 물건이라 여겨진다. 물론 잘 닦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구입하였다. 코넷 크리너(?)란 제품으로 이것 역시 우단이었고 바늘 닦는 솔이 같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판을 닦으면 일렬로 먼지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었다. 소리골 직각으로 먼지를 닦아도 그냥 남게 되는...
당시 레코드 음악지에 광고를 내는 세운상가의 오디오점이 있었는데 아는 점방이 없어 그냥 이 가게를 갔고 여기서 카본 솔이라고 하는 무지하게 비싼 판 닦는 솔을 보게 된다. 가격이 무려 3만 원이었다. 80년대 얘기다. 지금으로 치면 30만 원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 홀린 듯 이 비싼 솔을 덥석 사게 된다. 아마도 그 떨어지지 않는 지긋지긋한 먼지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제품은 덴마크제 AM 카본솔인데 알루미늄 재질로 이것을 손으로 잡아 정전기가 방지된다고 하는 그런 것이었다. 사용을 해 보니 정말로 골을 따라 밖으로 닫으면 먼지들이 솔에 달라붙어 떨어진다. 아주 편했다.
이 점방은 악명이 높은 가게였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오토폰에서 사은품으로 나온 침압 저울을 돈 받도 팔아먹었다고 하는 그런 가게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이 가게에서 사게 된 턴테이블이었다. 당시 나는 인켈 턴테이블을 쓰고 있었는데 하울링이 심해 음악을 듣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이 점방에 보니 데논 DP-67L이라는 고급 제품이 있었다. 이 제품은 1982년에 발매된 제품으로 당시 발매가 10만 엔이었으니 엄청 비싼 물건이었고 소위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가격을 물어보니 38만 원?을 부른다. 물론 이것도 대학생인 나에게는 비싼 가격이었지만 중학생 과외를 해서 이 돈을 모아 사게 된다. 악명이 높다는 가게에서 나에게 왜 이렇게 이 물건을 싸게 주었는지도 지금도 의문이다. 아마도 새 제품이 아닌 중고로 판단되다. 하지만 물건은 신품처럼 깨끗했고 원래 제치 상자도 있었다. 이걸 지금까지 쓰고 있으니 무려 38년 째다.
AM 솔을 잘 쓰고 있던 90년대에 이런 솔을 또 하나 보게 된다. Disaton이라는 독일제였는데 가격이 달랑 3천 원이다. 제품 바닥에 독일어가 쓰여 있어 우리는 독일제라 불렀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독일제는 설마 아니겠지 저렇게 싸니. 그리고는 가격이 하도 싸니 하나 구입을 했다. 손잡이가 플라스틱인 것이 흠이지만 사용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나중에는 이것이 5천 원으로 올랐고 정말로 독일제 제품이 맞다는 것이다. 그럼 내 3만 원짜리 AM는 뭐지? 뭐긴 더 고급 제품이지! 하곤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세월이 엄청 흘러 2022년 다시 가끔씩 LP를 듣다가 이 AM 솔이 생각이 나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아직도 물건 나오고 있었는데 가격이 무려 2만 원! 헐~~ 나는 38년 전에 3만 원에 샀는데? 무슨 얘기인가 하면 바가지를 썼다는 것이다. 학생이 내가 뭘 알았겠는가 그냥 좋다고 덴마크제라고 하니 그냥 거금을 주고 산 것이었다. 장사의 농간에 넘어가서. 지금도 그 괘심한 가게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그냥 턴테이블을 싸게 준 것으로 만족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 AM 솔을 쓰기는 하지만 먼지 떨어내는 스펀지가 세월의 흔적으로 많이 달아서 없어진 상태다. 그래서 아까우니 그냥 Disaton을 쓰고 있다.
나는 또 생각한다. "오디오는 구라로 시작해서 구라로 끝난다!" 맞다. 그 옛날 1984년, 지금 2022년에도 2만 원이면 살 수 있는 그깟 솔을 무려 3만 원에 산 것은 구라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생각한다. 지금도 나 같은 사람은 계속 있을 것이고 오디오상의 구라는 쭈욱~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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