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이야기 9

인디언의 여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한 미국 병사

미국의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평화롭게 오보를 불던 수석주자 존 드 랜시(John de  Lancie, 1921~2002)는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다행히 그는 죽지 않았고 전쟁도 승리로 돌아가 점령군이 되어 1945년 4월 가르미슈의 한 으리으리한 저택을 찾아가게 됩니다. 이 집의 주인은 유명한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였습니다. 점령군은 그 집을 빼앗아 군사적 목적으로 징발할 요량이었습니다. 하지만 슈트라유스는 미국 군인들 앞에서 독어가 아닌 불어로 당당히 외칩니다. "나는 와 를 작곡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다!" 이를 알아본 군인들은 집을 빼앗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음식 등을 건네게 됩니다. 이렇게 친해진 뒤 그 참전 군인인 랜시는 슬쩍 오보 협주곡을 의뢰해 보는데, 보기 좋게 단..

클래식 이야기 2024.08.08

〈자클린의 눈물〉이란 곡의 정체는?

1986년 독일의 오르페오 레이블에서 나온 〈밤의 하모니(Harmonies du soir)〉이라는 첼리스트 베르너 토머스(1941~ , 독일)의 소품집이 있다. 이 음반의 첫 곡이 프랑스 오페레타의 창시자인 오펜바흐의 "Les larmes du Jacqueline(자클린의 눈물)"이란 곡인데 친숙한 선율과 비가풍의 분위기 덕분에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 더불어 국내 클래식음반 사상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이에 토머스는 1996년 내한 공연을 갖기도 하였다. 결국 이런 인기에 힘입어 첼로 소품의 명곡으로 자리하게 되고 여타 첼리스트들도 녹음을 남기게 된다. 그런데 정작 이 곡의 정체가 모호한데 글로브(Grove) 사전의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 프랑스) 작품 목..

클래식 이야기 2024.08.08

스메타나 〈나의 조국〉, 나의 실수와 남의 실수(?)

1990년대는 지금처럼 인터넷 같은 미디어 매체가 활성화되어 있지 못했기에 해외 소식을 접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집에 커다란 접시형 안테나를 달아서 위성방송을 즐기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있었다. 당시 후배 하나를 알고 지냈는데 좀 산다고 떠벌리는 인물이었다. 어느 날 그는 "선배님!" 하면서 거품을 물기 시작하였는데 라파엘 쿠벨릭이 사십이 년 만에 조국에 돌아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지휘하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  "어떻게? "  "위성 접시 안테나가 있잖아요!" "그래 어떻든?"  "선배님 죽입니다!"  "뭐가?" "글쎄 쿠벨릭이 감정이 복받쳤는지 눈물을 흘리면서 지휘를 하더라니까요! " "그래, 넌 봐서 좋겠다."   "선배님도 나중에 엘디나 디브이디로 꼭 보세요."   그렇게..

클래식 이야기 2023.11.30

김소희 <춘향가>

우리나라의 국악은 세계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보적인 음악 양식이다. 민속음악과도 차원이 다르고 서양의 고전음악(classical music)에 비견되는 아니 그 보다 차원이 더 높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국악 중에서 백미라고 하면 역시 판소리를 들 수 있다. 특히 국창인 만정 김소희 선생의 과 는 말 그대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김소희(1917-1995) 선생의 춘향가 완창 녹음을 살펴보면 1936년, 1958년, 1976년, 1977년 모두 네 번으로 알려져 있다. 36년 녹음은 서울음반 CD의 선생 약력에 소개되고 있는데, 일제시대인 빅터레코드사의 SP 녹음이다. 1976년 녹음은 중앙일보사의 '국악의 향연' 전집 중으로 1988년 발매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1977년 녹..

클래식 이야기 2023.10.10

바버 바이올린 협주곡

현재 우리가 듣고 있는 클래식 음악은 대부분 고전파 시대를 중심으로 바로크나 낭만파가 그 주류를 이룬다. 물론 바로크 이전의 고음악을 즐기는 이들도 있지만 특히 현대 음악을 즐기는 이들은 매우 드물다. 아니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들어 보면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선율이 낯설어 호감이 가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곡 중에서는 명곡이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현대 작곡가들은 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쓰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쓰지 못하기에 같은 종류의 음악을 거부하고 현대의 더 진보된 음악만을 일부러 고집하는 것일까? 나는 쓰지 않는다가 아니라 쓰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노력..

클래식 이야기 2020.12.31

바흐 플루트 소나타와 파르티타

바흐가 남긴 플루트를 위한 소나타는 보통 일곱 곡 정도로 알려져 있다. 먼저 플루트와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BWV 1030~1032 세 곡, 플루트와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 BWV 1033~1035 세 곡 그리고 무반주 플루트 소나타(파르티타) BWV 1013 한 곡이다. BWV 1020은 진위가 의심스러운 바이올린 소나타이고, 두 대 플루트 소나타 BWV 1039는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 BWV 1027의 편곡이다. 또한 BWV 1031, 1033 역시 위작으로 의심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앞서 소개한 일곱 곡을 통상 바흐 플루트 소나타로 취급하게 된다. 작곡의 시기는 쾨텐의 궁정 악단장(카펠마이스터) 시절(1717~23년)로 보고 있는데 마이마르 궁정을 떠나 진정으로 음악을 이해하고 바흐의 가치를 알아..

클래식 이야기 2019.12.21

엘가 <사랑의 인사>

음악적으로 열세인 나라 영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명곡이라면 역시 (전 5곡)을 들 수 있다. 제목의 위풍당당은 잘못된 번역인데 원제의 'Pomp and circumstance'는 '화려한 의식'이란 뜻인데 두 단어의 고어에는 허례나 허식, 허황됨을 뜻한다. 원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에 나오는 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면 왜 '위풍당당(威風堂堂)'이 되었을까? 아마도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곡의 위엄과 당당한 분위기(특히 1번)를 반영한 음악적 상상력의 번역이라 하겠다. 혹시 해적의 나라에서 대영제국으로 성장한 조국을 빗댄 엘가의 은유가 아닐까 한다. 허세가 아닌 진정한 품위와 당당함을 떠올리게 되는. 특히 1번 행진곡은 에드워드 7세 대관식에 사용되었고 지금은 로열..

클래식 이야기 2019.02.17

최고의 피아노 3중주 베토벤 <대공>

현악 4중주와 더불어 실내악의 대표적 형식인 피아노 3중주의 최고 명작은 뭐니 뭐니 해도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제7번 이라 할 것이다. 제목은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1세의 막내동생인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되어 붙여진 것인데 곡의 수준 또한 대공의 지위에 있다 할 것이다. 루돌프 대공은 열여섯 살 때부터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웠는데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어 베토벤과 인간적인 유대를 맺었던 인물이었다. 특히 베토벤에게 연금을 지급하여 창작에 전념하게끔 배려를 해 주기도 했다. 이런 혜택을 누린 베토벤은 루돌프 대공에게 열 곡이 넘은 곡을 헌정하였고 이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역시 대공 3중주였다. 물론 피아노 협주곡 5번 가 있지만. 또한 루돌프 대공은 나중에 사제가 되어 추기경에까지 올랐고 이런 그를 ..

클래식 이야기 2018.12.16

미친(?) 협주곡

협주곡 로 유명한 작곡가 비발디(1678~1741)는 당대에 바흐(1685~1750)를 압도하는 최고의 음악가였다. 음악의 아버지라 하는 바흐가 비발디 곡을 편곡(열 곡)하여 내놓은 것이 그 반증이라 하겠다. 하지만 현재 그의 명성이나 진가는 폄하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스키장 이름으로 전락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발디는 엄연히 바로크 시대 최고의 음악가였고 독일에서 과장해서 내세우는 바흐는 비발디에 비해 거의 무명에 가까운 음악가였다. 이런 사실을 독일에서는 잘 거론하지 않고 있으면 음악사 자체가 독일을 중심으로 얘기하기에 더욱 그러하지만 분명히 이탈리아 음악은 당시 독일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비발디는 성 마르코 성당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조반나 바티스타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를 ..

클래식 이야기 2018.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