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이야기 12

고(故) 김범수 선생님을 추억하며

평소 알고 지내던 김범수 선생님(1947.6.14∼2004.4.1)께서 손수 전화를 주셨다. 다름이 아니라 신문에 난 나의 신춘문예 평을 보셨다는 것이다. 아니 떨어진 것을 가지고 창피하게도…. 한번 만나자는 것이었다. 며칠 후 광화문 근처에서 선생님을 뵈었다. 선생님은 17년 연상이셨는데도 늘 나에게 깍듯이 존대하시며 배려해 주셨다. 특히 나지막하고 차분한 목소리의 울림은 마치 덕망 높은 선비풍의 학자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신문에 난 신춘문예 평을 보셨는데 그 주제가 선생님 자신이 늘 관심 있게 연구하던 음악과 문학의 연관 관계였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여러 곳에 글을 기고하며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음악 평론가로서의 자질을 평가받고 싶은 요량으로 모 신문사 신춘문예 음악평론 부문에 응모했던..

세상사 이야기 2024.10.22

3백만 원짜리 폭탄 고에츠 바늘

얼마 전 고에츠 로즈우드 롱바디를 3백에 구입했다. 아버지 스가노 옹이 만들었다고 하는 아주 오래된 물건이다. 구입 시 바늘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부족했기에 사진으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당연히 정상인 제품으로 알고 비싼 금액이지만 고민 끝에 구입했다. 생각해 보면 스가노 옹이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로 구입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런데 최근 고에츠 수입상인 아날로그 사운드에서 점검 결과 리팁 즉 수리된 물건임이 밝혀졌다. 원래의 보론 캔틸레버가 두랄미늄으로 바뀌고 팁도 일반적인 방식으로 작업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ㄷ자 홈에 플레임으로 작업된다. 또한 이어 붙인 탓에 길이가 짧아졌고 그래서 판에 닿을 듯 내려앉아 있다. 처음에는 댐퍼 문제인 줄로만 알았다. 부랴부랴 전 판매자에게 전화를 하니 자신도 몰..

세상사 이야기 2024.09.21

최고의 음향을 가진 세종문화회관에 대한 단상

1978년(4월 14일 개관) 광화문 한복판에 세워진 세종문화회관이 있다. 1972년 화재로 소실된 시민회관을 대치하는 것으로 건립된 것이다. 개관 당시 규모는 3층 객석 3,822석(현 3,022석)으로 대단한 규모이며 국내 최대이다. 여기에 귀빈석(현재 없앰)까지 하면 무려 4,000석까지 늘어난다. 건물은 대강당, 소강당, 대회의실 그리고 당시 동양 최대 규모가 파이프오르간까지 갖춘 다목적홀로 그 위용을 자랑한다. 특히 대강당 전면의 여섯 개의 웅장한 석조 기둥과 양쪽의 부조가 압도적이다. 더불어 두 건물 사이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쓴 휘호 "문화예술의 전당"이라는 비석이 지금도 건재하다. 원래 국가적 행사를 위해 건립되었지만 그 활용이 제한적이라 주목적은 음악용이다. 1973년 아바도가 빈 필하모닉..

세상사 이야기 2023.02.03

판 닦는 솔

예전 LP 시절의 이야기이다. 1984년이니 대학교 시절로 당시는  LP가 주류를 이루던 때였다. 판을 들을 때면 정전기로 인한 먼지가 늘 성가신 존재였다. 그래서 솔을 이용하여 닦아내곤 하였다. 당시 내 집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우단이라고 하는 벨벳 재질의 솔이 있어 왔다. 상표는 영풍(?)이라고 적혀 있는데 짐작건데 1970년대 물건이라 여겨진다. 물론 잘 닦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구입하였다. 코넷 크리너(?)란 제품으로 이것 역시 우단이었고 바늘 닦는 솔이 같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판을 닦으면 일렬로 먼지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었다. 소리골 직각으로 먼지를 닦아도 그냥 남게 되는...  당시 레코드 음악지에 광고를 내는 세운상가의 오디오점이 있었는데 아는 점방이 없어..

세상사 이야기 2022.12.10

이런 지혜를 얻고 싶다.

오늘 영화  를 보다 감동적인 대사를 듣게 됩니다."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이 둘을 분별 할 수 있는 지혜를 " 단순하다면 단순한 권선징악의 액션 영화이지만 잠깐 등장하는 대사 한 마디에 깊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참으로 훌륭한 영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한국 영화는 교훈이 없다고.

세상사 이야기 2022.05.28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복각"이란 말이 있다. 판각본을 거듭 펴내는 경우에 원형을 모방하여 다시 판각한다는 뜻이다. "짝퉁"이란 말도 있다. 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뜻한다. 전혀 따른 뜻인데도 오디오에서는 마치 같은 의미로 통하는 것 같다. 물론 복각이란 의미 속에는 저작권이 소멸된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표절이 된다. 한 번은 평창동 대저택에 오디오 컨설팅을 나간 적이 있었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고 하는 집이었다. 거실에는 웅장한 스피커와 낯이 익은 앰프가 자리하고 있었다. 에프엠 어쿠스틱! 좋은 앰프를 쓰고 계시네요? 네, 실은 복각이에요!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앰프를 만드는 사람은 일반인이 아닌 기술자 즉 엔지니어다. 나아가 훌륭한 기술자는 장인이라 칭한다. 남이 공들..

세상사 이야기 2022.01.04

평범한 악(惡)에 대하여

몇 년 전인가 외국의 한 작가가 우리나라를 둘러보고는 이런 말을 하게 된다. 그의 눈에는 도심과 지방 산간 등지에 나붙은 수많은 현수막을 보고는 한국인들은 이것을 흉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되어 평범한 악처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흉한 것을 흉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될 정도로 만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주위를 둘러보라 정말 홍수와도 같이 수많은 현수막이 온 세상을 점령해 버린 상태다. 그런데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 왜냐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에. 외국을 보라 그 어떤 나라도 이렇게 현수막이 많은 나라는 없다. 가장 유명한 도시 빠리 시내에서 현수막을 본 적이 있는가? 한마디로 우리는 평범한 악으로 자리잡은 현수막 공화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에 왜 이렇게..

세상사 이야기 2021.10.14

내가 FM 방송을 듣지 않은 이유

나는 FM 방송을 듣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해 듣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들었었다는 얘기다. 왜 과거형이 되었을까? 고교 시절 들었던 고 한상우 선생님의 은 나를 클래식의 숭배자도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프로그램이다. MBC FM의 이 프로그램은 낮 11시에 방송되어 방학 때만 들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오아시스와 같은 독보적인 존재였다. 당시 한상우 선생님은 나에게 신적인 존재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 클래식 방송 진행자에 대한 꿈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1979년부터는 KBS FM에서도 클래식 전용 방송(1FM 93.1)을 통해 온종일 클래식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시대가 열리게 된다. 덕분에 방송을 통해 나는 클래식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

세상사 이야기 2019.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