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F 스피커

흙 속의 진주 케프 103/3

허당수 2018. 11. 15. 20:35

 

 

 

 케프 스피커의 전성기는 창업자 레이몬드 쿡이 살아 있던 1980년대였는데 그 중심에는 레퍼런스 씨리즈가 있었다. 영혼을 울리는 스피커인 107/2 역시 이 레퍼런스 씨리즈 중 최상급이었고 레퍼런스 기종 대부분이 말 그대로 명기 반열에 오른 그런 좋은 스피커들이었다. 101, 102, 103/2, 103/3, 104/2, 105/3, 105/4 그리고 107/2 그 계보라 하겠다. 이 중에 103/3는 104/2의 유명세에 비하면 가장 소외된 것이지만 그 가치는 실로 흙 속의 진주라 할 숨겨진 보배같은 존재다.

 107/2 한 기종에 매달리던 시절 104/2 구형을 들이곤 실망했고(T33 트위터 자성유체의 문제임을 알았더라면 신형을 구했을 것인데), 102 역시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리고 101이야 너무도 유명한 LS 3/5 계열이라 명성에 걸맞은 좋은 소리를 들려 주었고. 하지만 애매한 위치에 있는 103/3에 대한 정보나 관심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당시 케프 당원 한 분이 이런 레퍼런스 씨리즈 몇몇 기종을 섭렵하고 있었다. 105/4를 시작으로 107/2, 103/2 그리고 3/5까지.

 

 

 

 하루는 이 분의 전화가 왔다. 103/3은 어떠냐고? 나는 잘 모른다 했다 본 적도 없고. 그런데 이 기종이 매물로 나와 들이겠다고 했다. 집으로 가니 벌써 오토바이로 지금 스피커가 오고 있다는 것이었고 값이 싸서 그냥 질렀다는 것이다. 단돈 30만 원에. 그런데 파시는 분 얘기가 45에 사서 오래 들었으니 30에 판다고 그리고 소리는 저음이 없지만 고역은 그런대로 좋다고. 배달된 스피커는 북셸프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덩치가 있었다. 후다닥 적당한 스탠드를 꺼내 올려 놓고 들어 보니 나름대로 괜찮았다. 그리고 살펴보니 밑 바닥에 우퍼 한 발이 박혀 있었고 엣지가 삭아 있었다. 이래서 저음이 없다고 했나? 그래도 제법 나던데?

 우퍼 가운데 엣지를 보니 104/2에도 들어가는 도넛 엣지와 동일한 것이었고 그래서 엣지를 구해 수리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붙이는 것은 둘이 같이 직접해 보기로 하고. 며칠 후 엣지가 외국에서 도착하여 작업에 들어 갔다. 우퍼는 밑에 장착되어 있어 뜯기 쉬웠고 삭은 엣지를 칼로 살살 긁어내고 동봉된 본드로 잘 발라 새 엣지를 재주껏 잘 붙였다. 생각보다 작업은 수월하게 마무리되었고 본드가 마르기를 기다려야 했다.

 

 

 

 다시 며칠이 지나고 엣지가 말라 같이 들어 보게 되었다. 이제 저음이 나오면서 소리가 완전히 바뀌었는데 엄청난 음장감에 고급스런 고음의 투명함까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더욱 압권인 것은 그 유명하다는 ATC 20과의 비교였다. 그 때 마침 그 분이 ATC 중고를 들였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스탠드에 올려 가며 동일한 앰프인 크렐에 물려 비교 시청을 했는데 너무 싱겁게 끝나고 만다. 케프의 압승. 상대가 되지 않았다. 고작 30만 원짜리 스피커에... 나는 말했다. 30에 엄청난 물건을 집으셨네요!

 앰프의 매칭은 처음 물린 크렐 분리형(25sc+300c)은 107/2 전용이기에 어드컴 750과 오디오리서치 TR SDA1파워로 울렸다. 나중에는 골드문트 미메시스 2+8까지 갔는데 정말로 환상적 소리를 내주었다. 너무도 좋은 소리였기에 나도 구하기로 마음 먹게 된다.

 

 장터에 구한다고 했더니 30만 원에 팔겠다고 바로 연락이 왔다. 그런데 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베이에 찾아 보니 망만을 올린 것도 있었지만 그냥 번거러워 포기했다. 그러고는 한동안 연락이 통 없었다. 그 분은 망을 빼고 듣는다고 하면서 그냥 사시지 하고 말을 흘렸다. 그럴 걸 그랬나. 6개월쯤 지났을까 장터에 스탠드와 큐브까지 포함된 물건이 올라왔다. 그런데 상태 영 아니었다. 모서리 대부분이 뭉게지고 부풀어 오른 곳도 있었다. 하지만 스탠드와 큐브가 있고 유닛이 상태가 좋아 망서리다 놓칠까 그냥 질러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서식지가 부산이었고 업자 물건이었다. 하지만 업자는 걱정말라며 큰 소리를 쳤다. 믿어보지 뭐, 가격은 65만 원. 고속버스 편으로 물건을 보냈고 받으러 갔는데 스탠드가 부착된 상태로 보내 부피가 상당해 운반에 고생 좀 했다. 집에 와서 보니 사진 그대로 외관은 최악, 유닛은 정상, 엣지는 나감이었다.

 엣지는 지난번 그 당원분 것을 살 때 여분을 사 놓아 바로 붙이기로 했다. 이번에는 그분이 우리 집으로 출장을 오게 된다. 한 번 붙여 본 경험자이니. 하지만 원래 엣지 제거를 위한 약품이 상태가 좋지 않아 깨끗한 작업은 되지 못했다. 그래도 붙기는 붙었으니 소리는 잘 나겠지. 엣지가 마른 뒤 며칠 후 들어 보니 역시 대단한 소리 그 자체였다. 그런데 대리석을 받칠려고 보니 전용 스파이크가 없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6mm 스파이크를 구해 붙였는데 대리석 밑에 받칠 고무가 없었다. 아시다시피 케프에는 스파이크가 붙어 있고(이미 80년부터다) 이를 감싸고 있는 고무발이 끼워져 있어 이것을 빼 대리석 밑에 받치면 받침 형태 완결이다. 그런데 고무가 없어 또 고무를 따로 구했다. 나중에는 우연히 원래 스파이크를 구했는데 소리도 더 좋았다.

 

 나는 앰프를 아캄 알파 9 인티로 물렸는데 제법 그럴듯한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골드문트 분리형과는 격차가 심했다. 그래도 만족스럽게 오래 들었다. 아마도 큐브를 낀 덕에 잘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집을 이사할 일이 생겼고 짐을 줄이고자 이 스피커를 내놓게 된다. 사겠다는 사람이 집에 왔고 이상한 핑게를 대며 가격을 30을 불렀다. 65만 원에 고속버스 운송료 그리고 엣지까지 교체했는데 30에 달라고. 안 팝니다! 하고는 그를 내몰았다. 얼마 후 사과 문자가 왔고 나는 에이~ 그냥 쓰자 했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03/3이 가게에 나온 것을 보게 된다. 내 물건의 상태가 워낙 좋지 않음이 늘 마음에 걸려 가게로 물건을 보러 갔다. 월넛 색깔의 상태가 아주 좋았다. 내 것은 아주 진한 밤색이라 마누라가 시꺼멌다고 늘 불평을 하곤 했기에, 나는 교환을 하자고 했다 물론 내 것은 상태가 안 좋으니 차액을 지불하고 바로 구입했다. 그런데 이 상태 좋은 놈도 엣지가 나간 상태여서 다시 엣지를 구해다가 이번에는 직접하지 않고 전문업체에 맡기기로 했다. 지난번 작업이 매끄롭지 못한 것이 있어서. 엣지 교환은 전문가의 손길로 아주 잘 되었고 설레는 맘으로 소리를 들어 보았다. 하지만 에이징 문제인지 영 소리가 예전 것만 못했다. 내 귀가 이상한가?

 시간이 더 흘렀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소리도 모르는 서당개인 내 아들 놈도 아빠 소리가 이상해 하는 것이었다. 나는 충격에 휩싸였고 그 가게를 찾아가 하루만 원래 내 것을 빌려달라고 간청했다. 두 대의 103/3 연달아 들어 보니 상태가 엉망이고 엣지도 시원지 않게 붙인 내 것이 소리가 더 풍부했다. 요상하네~ 하도 궁금해 살짝 몰래 우퍼만을 바꾸어 보았다. 내 것보다 나중에 나온 유닛이었는데 뭐지는 모르겠지만 소리가 달랐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좋았던 것이다. 결국 이 알 수 없는 차이(자성유체, 유닛 형번 교체, 에이징?)는 미제의 사건으로 남게 된다. 나는 다시 가게로 가 사정을 해서 그냥 내 것을 다시 들고 오게 되었다. 약간의 비용은 날렸지만 수업료를 낸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돌아온 허름한 내 103/3, 물건마다 주인이 따로 있나 보다.

 

 

 

        

 

 

 

 한편 나에게 103/3의 진가를 전파한 그 당원은 사실 큐브와 스탠드가 없는 상태였는데 내가 있는 것을 구했다고 하니 자신도 구할 거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세운상가의 가게에 103/3이 나온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게 큐브와 스탠드가 있는 것이다. 그 당원에게 지나가는 말로 세운에 온전한 103/3이 나와 있더라 했다. 그러자 부랴부랴 그 가게에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혹시 큐브와 스탠드를 따로 팔지 않겠냐고? 가게에서는 일단 오라고 했다. 나도 같이 갔다. 결국 스탠드와 큐브만을 샀는데 그 가게에는 스피커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물론 잘 알아서 팔겠지만.

 원래 103/3는 밑에 우퍼가 있기에 그냥 놓으면 우퍼 소리를 막게 되기에 스탠드는 필수다. 그런데 매물들을 보면 스탠드를 잊어버린 것들이 대부분이다. 나사로 연결하는 전용 스탠드라 다른 곳에 쓸 수도 없는데 말이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혹시 아예 없는 상태로 케프에서 팔았나? 그러면 소리가 안 좋은데???

 대단한 것을 얻은 양 그 스탠드를 들고 나와 당원은 집으로 가 스탠드를 연결하였다. 보통의 스탠드와는 소리가 달랐다 물론 좋다는 이야기다. 잘 보니 뒤로 약간 귀울기가 있는 것이었는데 이게 아주 음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스탠드는 그냥 나무로 만든 평범한 것인데 말이다. 나중에 나는 103/3에 붙인 앰프를 아캄에서 아큐페이즈 210로 올렸으나 그 분은 오히려 끝까지 다 갔다고 하면서 콰드 44+405로 내리셨다.

 

 103/3에도 다른 기종과 마찬가지로 큐브가 존재한다. 근데 이상한 것은 아캄 인티로 물렸을 때는 큐브를 끼웠을 때와 뺐을 때의 차이가 너무 커 빼고는 듣지 못한 지경이었다. 끼웠을 때가 음상이 뒤로 밀리면서 순도 높고 고운 음색이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큐 인티 앰프로 물렸을 때는 오히려 큐브를 끼웠을 때 음상이 너무 뒤로 밀려서 탁한 음색이 되는 것이었다. 아마 일정 수준의 앰프에는 별로 효과가 없는 듯했다.

 

 

 

 최근 103/3 매물이 나왔는데 상태가 좋고 우퍼 엣지 교체와 트위터 T33 자성유체를 보충했다는 것이었다. 다만 전용 스탠드와 큐브만이 빠진. 또 내 것과 바뀌어 볼까 하는 생각이 났지만 전에 있었던 미제 사건을 떠올리며 꾹 참기로 했다. 그런데 이 물건이 잘 안나가는 것이어서 "흙 속의 진주"라는 댓글을 달았더니 바로 나가 버린 것이다. 며칠 후 아큐페이즈 211을 사용하는 분의 연락이 왔다. 당수님 말대로 바로 103/3을 구입했다고. 바로 내가 댓글을 단 물건이었고 자신도 이제 당원이 되었다고 하면서 소리가 정말로 좋다고 했다. 그도 나와 같은 시스템 즉 아큐페이즈 210(211) + KEF 103/3의 사용자 동지가 된 셈이다.

 KEF Ref. 103/3 중고가 60만 원 내외 하지만 그 소리는 0을 하나 더 붙인 요즘 스피커 600만 원짜리를 능가하는 놀라운 것이다. 오디오에도 돈대로 가지 않은 것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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