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이야기

비상 깜박이의 이상한 용도

허당수 2019. 12. 21. 10:01

 1970년대 말이었다. 당시 나의 집에 첫 자가용 포니가 생겼다. 한창 차에 관심에 많았을 때여서 나는 차에 있는 여러 기능들을 기사 아저씨에게 묻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핸들 몸통에 붙어 있는 손톱만한 이상한 스위치를 보게 된다. 거기에는 빨간색의 삼각형 모양이 새겨져 있었고 위치도 쓰기 힘든 곳이다. 아저씨에 물어본 봐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켜는 것이라 했다. 브레이크 파열 같은 긴급 상황! 하지만 이런 기능을 거의 쓸 일이 없었고 또 비상등이 켜진 자동차를 보는 것 역시도 드물었다. 얼마 후 나는 이 등이 켜진 차를 보게 된다. 바로 경찰 버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차가 바로 시위 진압용 전경 버스였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긴급한 상황이 맞군 했다. 하여튼 기자 아저씨가 포니를 몇 년 간 운전하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이 비상등 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긴급한 상황이 없었다라는 얘기다. 다행스럽게도.

 세월이 아주 많이 흘렀다. 아마 2010년 경부터였을 것이다. 비상등 사용이 급증하였다. 그런데 원래 기능과 더불어 이상한 기능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많이 쓰는 경우가 불법 주차(마치 자신은 불법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듯한) 그리고 불법 행위를 한 뒤 다른 차에게 미안하다는 신호, 후진할 때(물론 후진등도 켜진다), 이외에도 모든 정상적인 운행 행위가 아닌 경우에 이 비상등을 켠다. 특히 버스나 대형 트럭이 비상등을 켰다면 반드시 요상한 행위가 뒤따른다. 마치 불법 행위 신호와도 같은 것이고 또 불법 행위를 한 뒤의 면책을 요구하는 등이 된 셈이다. 물론 급정거나 삼각대를 대신하는 원래의 기능으로 쓰이기도 한다. 또한 길가에 잠시 정차했을 때도 비상등을 켜는데 원래는 한쪽 깜박이를 켜는 것이 정상이다.

 나는 비상 상황이 아니면 절대 비상들을 켜지 않는다. 이제 비상등은 비상한 경우에 쓰는 것이 아닌 불법의 만병통치약에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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