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각"이란 말이 있다. 판각본을 거듭 펴내는 경우에 원형을 모방하여 다시 판각한다는 뜻이다. "짝퉁"이란 말도 있다. 가짜나 모조품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뜻한다. 전혀 따른 뜻인데도 오디오에서는 마치 같은 의미로 통하는 것 같다.
물론 복각이란 의미 속에는 저작권이 소멸된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표절이 된다. 한 번은 평창동 대저택에 오디오 컨설팅을 나간 적이 있었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고 하는 집이었다. 거실에는 웅장한 스피커와 낯이 익은 앰프가 자리하고 있었다. 에프엠 어쿠스틱! 좋은 앰프를 쓰고 계시네요? 네, 실은 복각이에요!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앰프를 만드는 사람은 일반인이 아닌 기술자 즉 엔지니어다. 나아가 훌륭한 기술자는 장인이라 칭한다. 남이 공들여 설계한 앰프를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그대로 베끼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베끼는 사람은 기술자가 아니다. 기술자는 기술자만의 자부심이라는 것도 존재하기에. 그래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기술은 선보이며 진정한 기술자는 남의 기술을 베끼지 않는 법이다. 창피한 일이기에. 더 웃끼는 것은 짝퉁을 만드는 이가 그 짝퉁에 자랑하듯 자신의 영어 이름을 붙이는 것도 있다. XXX 복각이라고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마크 레빈슨이라는 앰프는 마크 레빈슨이라는 설계자의 이름이다. 이름이 상표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명예라는 개념이다. 패스 랩 역시 넬슨 패스의 이름이다. 제프 롤랜드, 댄 다고스티노 역시 설계자의 이름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복각이 아닌 짝퉁을 찾는 애호가들이 많다. 즉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일까? 아님 단순한 호기심, 아니면 정말로 몰라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오디오에서 복각이란 한마디로 짝퉁 즉 가짜다. 세관에서 짝퉁 물건을 적발하고는 그 물건들은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생객해 보라, 소각이다!
HB 케이블 디자인이라는 독일의 오디오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투명 아크릴로 만든 멀티탭이 유명하다. 그런데 국내에서 이것을 그대로 베낀 제품이 여럿 있다. 가격도 원래 것에 비해 저렴하다. 물론 HB는 가격이 비싸다. 8천 5백 달러! 왜 비쌀까? 아크릴은 비싼 재질이 아니다. 그런 물건의 개념과 그것을 생각해 낸 노하우 값인 것이다. 단순한 재료비가 아니란 것이다. 좋은 음질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고급 기술료라 할까? 그래서 짝퉁은 가격이 저렴하다. 그러면 음질은 어떨까? 들어본 결과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 왜냐 모양만 같고 숨은 노하우는 베낄 수가 없으니.
한편 케이블에서도 복각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앰프의 경우 동일한 부품 조달이 가능하지만 케이블은 동일한 선재를 구할 수는 없다. 동일하다면 그것은 진품이 된다. 단순히 구조와 색깔만 같게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짜인 셈인데 마치 중국 OEM이라 진짜라 말한다. 모두 거짓이다. 또한 최근에는 아큐페이즈, 크렐, 매킨토시에서 만든 케이블이 복각이란 미명 하에 유통되고 있지만 모두 가짜이며 이들 회사에서는 케이블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상표를 마음껏 도용하는 것이다. 소리도 확인 결과 막선 수준이다.
쉽게 생각해 오디오에서는 복각이란 없고 짝퉁이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의 단골 오디오 가게 주인이 늘 떠드는 말 즉 "오디오는 구라로 시작해서 구라로 끝난다"라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으니 정말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세상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 닦는 솔 (0) | 2022.12.10 |
---|---|
이런 지혜를 얻고 싶다. (0) | 2022.05.28 |
평범한 악(惡)에 대하여 (0) | 2021.10.14 |
내가 FM 방송을 듣지 않은 이유 (0) | 2019.12.28 |
한글날의 슬픈 단상 (0) | 2019.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