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악은 세계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보적인 음악 양식이다. 민속음악과도 차원이 다르고 서양의 고전음악(classical music)에 비견되는 아니 그 보다 차원이 더 높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국악 중에서 백미라고 하면 역시 판소리를 들 수 있다. 특히 국창인 만정 김소희 선생의 <춘향가>과 <심청가>는 말 그대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김소희(1917-1995) 선생의 춘향가 완창 녹음을 살펴보면 1936년, 1958년, 1976년, 1977년 모두 네 번으로 알려져 있다. 36년 녹음은 서울음반 CD의 선생 약력에 소개되고 있는데, 일제시대인 빅터레코드사의 SP 녹음이다. 1976년 녹음은 중앙일보사의 '국악의 향연' 전집 중으로 1988년 발매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1977년 녹음은 선생이 자비로 성음에서 사가판으로 나온 것이다. 1년 만에 재녹음을 한 것은 아마도 추정컨데 스스로 뭔가 미흡한 것이 있어 이를 보완한 것이고 음반사로서는 1년 만의 녹음이라 판매가 저조할 것이라 자비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성음 사가반은 소량 생산되어 현재 고가로 거래되는 명반이다.
또한 두 녹음이 다른 점도 있는데 76년 녹음에서는 '옥중망부사' 대목에서 '쑥대머리' 창본을, 77년 녹음은 '옥방형상' 창본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음질은 76년이 담백하다면 77년은 풍부한 울림을 자랑한다. 특히 77년 녹음은 "소위 만정제 춘향가"의 명반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시작부에 효과음인 대금 선율이 흐른다. 총 연주 시간은 무려 5시간 3분 34초이다. 오페라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것도 1인이 독창이다.
침고로 서울음반 CD(1977년 녹음)에는 선생의 1978년 10월 자 글이 실려 있는데 이 글에서 3년 전에 <심청가>를 녹음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면 75년이라는 것인데 실은 74년 녹음이 맞다. 춘향가 녹음이 77년이 있었고 이 글은 발매연도인 78년에 썼기에 선생님이 착각을 하신 것 같다.
5시간이 넘은 이 대작을 들노라면 그 감동의 폭도 한이 없도다! 더불어 마지막 춘향 어사또 상봉 대목의 절절함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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