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이야기

스메타나 〈나의 조국〉, 나의 실수와 남의 실수(?)

허당수 2023. 11. 30. 22:07

 

 1990년대는 지금처럼 인터넷 같은 미디어 매체가 활성화되어 있지 못했기에 해외 소식을 접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집에 커다란 접시형 안테나를 달아서 위성방송을 즐기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있었다. 당시 후배 하나를 알고 지냈는데 좀 산다고 떠벌리는 인물이었다. 어느 날 그는 "선배님!" 하면서 거품을 물기 시작하였는데 라파엘 쿠벨릭이 사십이 년 만에 조국에 돌아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지휘하는 것을 봤다는 것이다.
 "어떻게? " 
 "위성 접시 안테나가 있잖아요!"
 "그래 어떻든?" 
 "선배님 죽입니다!" 
 "뭐가?"
 "글쎄 쿠벨릭이 감정이 복받쳤는지 눈물을 흘리면서 지휘를 하더라니까요! "
 "그래, 넌 봐서 좋겠다."  
 "선배님도 나중에 엘디나 디브이디로 꼭 보세요."  
 그렇게 깐죽거리는 후배가 어찌나 밉고 부럽던지….
 이 실황은 씨디 음반이 1990년 체코에서 발매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라이선스가 1999년 비로소 발매되었다. 그때 후배의 말이 생각나서 음반을 구입하였다. 물론 영상은 없었다. 사실 지휘자 쿠벨릭이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지휘하여 음반을 내놓은 것은 실황을 포함해서 모두 여섯 번이다. 그리고 곡의 초연 이후 1946년부터 스메타나 기일인 오월 십이일에 맞춰 개최되는 〈프라하의 봄〉 음악 축제에서 첫 곡으로 연주되는 관행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 첫 지휘자가 서른두 살의 젊은 쿠벨릭이었다. 이런 만큼 곡에 대한 애착이 남다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섯 번의 녹음 연주 모두 어느 것이나 훌륭한 연주이지만 특히 그중에서도 망명 중인 1971년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것이 가장 정평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녹음은 1991년 도쿄 실황이다.
 한 세기가 가기 전인 1999년 나는 『명반의 산책』이라는 음반 가이드 책자를 하나 내놓게 되었다. 여기에 체코를 대표하는 국민적 작곡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빠질 리가 없었다. 통상 한 곡당 세 가지의 좋은 연주를 추천하였는데 특별히 쿠벨릭의 연주가 두 가지나 소개 되었다. 이것은 앞서 말한 후배의 영향이 컸다. 쿠벨릭이 울면서 지휘했다고 하는데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영상물을 본 적이 없었고 오직 음반을 통해 연주만을 접했고 울었다고 하는 사실 여부는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후배도 음악에 꽤 조예가 있다고 자부하는 터였기에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난 책에다가 1990년  〈프라하의 봄〉의 실황 연주를 눈물을 흐리며 지휘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라고 썼다. 하벨 대통령도 동석한. 말하자면 보지도 않고 그냥 썼다는 얘기다. 또 두 번째 책 『클래식 이야기』에도 같은 글을 실었다.
 세월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법 많이 흘렀다. 오 년 정도 되었을까? 처음에는 비싸던 디브이디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도 매우 쉬워졌다. 그래서 쿠벨릭의 연주가 생각이 나서 디브이디를 찾아 보았다. 하지만  국내에선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약간의 비용을 감수하면서 외국에서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자아~ 그 감동적인 현장에 동참해 볼까나? 음악회는 먼저 스메타나의 오페라 〈러브셰〉 중 팡파르로 시작되면서 하벨 대통령 내외가 로열 박스에 자리한다. 이어지는 체코의 국가 연주, 착석, 그리고 〈나의 조곡〉의 첫 곡인 〈높은 성〉이 시작된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쿠벨릭을 모습을 보기 위해 눈을 까뒤집고 영상을 감상했다. 하지만 장장 팔십 분이나 되는 연주 내내 쿠벨릭의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다. 다만 첫 곡의 도입부에서 다소 상기된 듯한 표정으로 지휘를 하는데 자세히 보니 눈시울이 다소 붉어짐을 알 수 있었고 종곡 피날레에서도 감격에 겨운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연주 내내 땀을 많이 흘렸는데 혹시 이것을 보고 그놈의 후배가 과장을 해서 뻥을 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오히려 팔십 분 동안 눈물 흘리는 장면을 찾아내려고 부라린 내 눈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헉! 그 허탈감과 당혹스러움이란… 책에다가 눈물을 흘린다고 두 번이나 썼는데 결국 실없는 사람이 되고만 꼴이었다. 그것도 수정될 수 없는 활자화된 책이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나는 그것을 수정하고자 무려 팔 년을 기다려야 했고 드디어 2009년 나온 책인 『불후의 클래식』에 '눈시울을 붉히며'로 수정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런 수정을 하기 전인 2004년 우연한 기회에 의사가 쓴 한 권의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구절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지휘자 쿠벨릭이 1990년 〈프라하의 봄〉 음악제에서 〈나의 조곡〉을 연주한 음반을 소개하면서 쿠벨릭이 눈물을 흘렸고 하벨 대통령과 모든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었다. 어라! 설마 그럴 리가? 혹시 다른 영상물을 본 것이 아닐까? 순간 내 머리를 스쳐 가는 나의 실수 맞어! 내가 책에다 쿠벨릭이 눈물을 흘린다고 썼잖아? 그 사실을 수정한 것은 2009년 나온 책에서 이고. 모든 것이 내 탓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후배 말만 믿고 확인도 하지 않고 쓴 내가 경솔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 잘못된 정보를 전해 준 후배는? 연락이 끊긴 지 이미 오래다.
 미술 시험 시간에 생긴 일이다. 답은 화가 '로뎅'이었다. 정답을 쓴 학생의 뒤에 앉은 학생이 이것을 컨닝했다. 그런데 잘못 보고 '오뎅'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뒤에 앉은 학생은 혹시 커닝한 것이 들통날까 봐 머리를 굴렸다. '덴뿌라!' 

 나는 얼마전 덴뿌라를 발견하게 된다. 2010년 네이버 지식백과의 곡의 해설인데 여기서도 하벨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고 아예 DVD로 확인이 가능하다는 문구까지 있다. 정말일까? 물론 아니다. 이 DVD는 이미 절판이다. 그런데 왜? 곡의 해설에 이런 글을 실었을까? 마치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아니라 쿠벨릭의 나의 조국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심리학 용어 중에 맹점이라는 뜻의 '스코토마(scotoma)'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그리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부정적인 선입관으로 인해 실존하는 사물이나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족 : 그런데 나의 실수를 보고 쓴 그 책에는 더 이상한 것이 있었다. 나카리아코프라는 트럼펫 주자가 연주한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 연주가 훌륭한 명연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음반의 제목이 "No Limit"라는 것이다. 한계가 없는 연주라고 하면서. 하지만 정작 "No Limit" 음반에는 〈찌고이네르바이젠〉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필자는 차 속에서 들었다고 썼다. 뭐지? 이 책은 시공사에서 나왔는데 배포된 책을 부랴부랴 회수하여 음반 제목과 내용을 바꾸어 다시 출간하기에 이른다. 또 어떤 의사는 보케리니는 첼로 협주곡을 다섯 곡을 남겼는데 9번 협주곡을 소개한다고 한다. 다섯 개인데 9번을 소개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의사가 왜 클래식 음악 책을 쓸까? 클래식이 우습게 보이는가~

 

 

 

 본 글은 2009년 발간된 나의 산문집 『추억 속으로 음악 속으로』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