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가 남긴 플루트를 위한 소나타는 보통 일곱 곡 정도로 알려져 있다. 먼저 플루트와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BWV 1030~1032 세 곡, 플루트와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 BWV 1033~1035 세 곡 그리고 무반주 플루트 소나타(파르티타) BWV 1013 한 곡이다. BWV 1020은 진위가 의심스러운 바이올린 소나타이고, 두 대 플루트 소나타 BWV 1039는 비올라 다 감바 소나타 BWV 1027의 편곡이다. 또한 BWV 1031, 1033 역시 위작으로 의심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앞서 소개한 일곱 곡을 통상 바흐 플루트 소나타로 취급하게 된다.
작곡의 시기는 쾨텐의 궁정 악단장(카펠마이스터) 시절(1717~23년)로 보고 있는데 마이마르 궁정을 떠나 진정으로 음악을 이해하고 바흐의 가치를 알아본 레오폴드 영주의 악단장 제의를 받고 옮겨간 좋은 시절이다. 더불어 바흐가 남긴 대부분의 명곡들이 주로 이 쾨텐 시절에 나오게 된다.
이런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BWV 1031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이 소나타의 2악장 시칠리아노(siciliano)의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를 이 악장을 피아노 독주로 편곡한 바 있고 오히려 피아노 편곡이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런 명곡이지만 이 곡은 위작으로 알려진다. 그것은 이 곡의 악보가 18세기 C. P. E. 바흐에게서 나왔고 특히 2악장 시칠리아노가 C. P. E. 바흐의 감정과다 양식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것 이외에도 여러 음악적인 기법들이 바흐 것과는 다르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래서 어떤 음악학자는 바흐의 작품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어쨌든 바흐의 자필 원본 악보가 없는 위작 의심 작품으로 자리한다. 하지만 곡이 워낙 아름답고 뛰어나기에 이런 곡을 만들 수 있는 이는 바흐 밖에 없다는 비논리적인 이유가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 BWV 1033도 위작이라고 추정되는 곡인데 1악장 안단테 이후 등장하는 알레그로의 경쾌함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서는 명작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프랑스적 우아함과 생기에 넘치는 선율 그리고 명상적 분위기가 뛰어난 작품으로 자리한다.
이렇게 본다면 여섯 곡의 소나타 중에는 특이하게도 위작으로 의심받는 두 곡(BWV 1031, 33)이 진짜 바흐 작품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앞서 지적한 대로 바흐 작품이 맞지 않을까는 기대를 가져본다. 훗날 원본 악보가 발견될 수도 있으니.
바흐가 남긴 무반주 소나타는 모두 세 종류 악기를 위한 것인데, 무반주 첼로 모음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그리고 무반주 플루트 파르티타가 그것이다. 다만 첼로와 바이올린 곡은 모두 여섯 곡씩을 남겼지만 플루트는 한 곡만을 남기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중음을 낼 수 없는 악기인 플루트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원래 제목은 그냥 플루트를 위한 독주로 되어 있지만 바흐는 알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로 이루어진 표준적인 모음곡 형태를 벗어난 것에는 파르티타(partita)란 것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곡의 4악장이 지그가 아닌 부레로 되어 있다. 그래서 보통 무반주 플루트 파르티타라고 부른다. 곡은 단선율 악기인 플루트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시간차를 이용한 저음과 고음부의 분리하고 있어 매우 어려운 난곡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사라방드에는 바흐 내면의 고독과 영혼의 울림을 간직한 깊은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
바흐 플루트 소나타와 무반주 파르티타는 모든 플루트 주자에게는 하나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다. 일견 가볍고 아름답게만 보이는 악기인 플루트의 깊은 음악성을 드러내는 유일한 곡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곡의 연주로는 가장 유명한 플루트 주자인 랑팔과 골웨이를 떠올리게 되지만 실상은 아쉬움이 앞서게 된다. 그것은 연주가 아름다운 음색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다른 연주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떠올리게 되는 이는 바로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주자인 오렐 니콜레이다. 먼저 두터운 음색과 특히 반주를 맡은 칼 리히터의 완벽한 반주로 인해 매우 탁월한 수준을 보여 준다. 단지 니콜레의 과도한 비브라토가 거슬리지만 이마저도 리히터의 높은 음악성 탓에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다. 옥에 티라고나 할까?
한편 같은 스위스 출신의 페터-루카스 그라프의 연주는 니콜레를 뛰어넘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반주를 맡은 델러의 연주가 리히터보다 아쉽지만 플루트는 그야말로 이상향이라 할 것이다. 두터운 질감을 물론이요 깊디깊은 울림은 바흐가 추구한 내면의 심오한 울림 그 자체라 하겠다. 특히 반주가 없는 무반주 파르티타의 고독하고도 우주적인 울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자칫 플루트란 악기가 가벼운 것이다란 선입견이 있는 이들에게 이 그라프의 바흐 소나타 연주는 하나의 충격이라 할 최고의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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