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이야기

듀얼런트 파워 케이블 두 번째 이야기

허당수 2020. 12. 18. 21:30

 지난번 듀얼런트 파워케이블을 이야기한 바 있다. 당시 만든 것은 DCA16GA 선재였는데 이것은 AWG 16이어서 다소 약한 듯해 미련이 남아 있었다. 물론 AWG 16의 허용 전류는 13A(220X13=2860W)여서 결코 부족함이 없지만 좀 더 굵은 선재로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더 굵은 선재인 DCA12GA로 다시 만들어 보기로 결심한다. 국내에서는 DCA12GA 600V라는 것만 판매되고 있는데 이것은 면피복이 아닌 일반 비닐(PVC) 피복이다. 가격도 면피복인 가는 DCA16GA보다 싼 것이라 별 의미가 없는 선재로 보였다. 외국에서는 면피복의 DCA12GA를 판매하고 있어 이베이를 통해 주문을 했다. 그런데 홍콩 판매자가 한국으로 가는 비행 편이 없어 배송이 불가하여 주문 취소 통보를 보내왔다. 헐~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주문했지만 역시 배송이 불가하단다. 나는 다시 주문을 했고 홍콩 판매자는 배편으로 보내도 되느냐 했고 나는 좋다고 답했다. 그래서 거의 한 달이 걸려 DCA12GA 6미터가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잽싸게 세 가닥을 꼬기 시작했다. 2미터씩 세 가닥을 꼬니 거의 1.8미터 이상이 나온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손에 기름이 묻는 것이었다. 원래 오일을 먹인 피복인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손에 묻어나는 것은 처음이다. 왜냐하면 지난번 만든 가는 선재인 DCA16GA는 전혀 기름이 묻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케이블의 기름에 모든 먼지가 달라붙은 것이었다. 꼬은 선을 보니 정말로 답이 없는 듯했다. 만질 수도 없도 또 그냥 두면 먼지가 달라붙고 정말로 심각했다. 여기에 기름 냄새까지 진동한다.

 

 뭔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꼬는 선재에 다시 면피복을 입혀 볼까? 하지만 끈적이는 선재에 면피복을 입히는 것은 서로의 마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한 것이 매끄러운 수축 튜브를 씌우는 것이었다. 적당한 굵기를 골랐고 색깔은 검은색이라 검정으로 씌우기로 했지만 문제는 검은색 수축 튜브에는 회사에서 인쇄한 흰색 글씨가 있는 것이었다. 지우기도 되게 힘든. 하는 수 없는 다른 색깔을 찾았다. 결국 선택한 것은 빨간색. 그런데 정착 문제는 이런 수축 튜브에도 끈적이는 듀얼런트가 끈끈한 마찰로 인해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황당하여 듀얼런트 본사에 문의를 했다. 그들의 답은 짧았다. DCA16GA보다 DCA12GA 기름의 양이 조금 더 많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많은데? 그래서 생각했다. 국내 수입상도 비닐 피복선만 수입을 하고 면피복선을 수입하지 않은 것이 바로 이 기름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외국에서 판매하는 곳도 드물고.

 케이블의 처리가 진짜로 난감했다. 이를 본 마누라가 거든다. 듀얼런트에 끈을 묶어 수축 튜브에 넣고 반대편에서 당기면 될 것 같다고 한다. 될까? 문제는 듀얼런트를 묶은 선을 어떻게 가는 구멍의 수축 튜브로 밀어 넣느냐는 것이었다. 긴 막대를 생각했다. 막대 끝에 선을 묶고 튜브 속으로 넣고 손으로 밀고 밀기를 반복하니 겨우 반대편으로 막대가 나온다. 막대를 풀고 끈을 당기기를 반복하자 듀얼런트가 튜브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물론 끈적임 탓에 쉽지 않았지만 천천히 수축 튜브 속으로 듀얼런트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이서 낑낑거리면 당기기를 계속하니 결국 튜브 속으로 아주 어렵게 그리고 빡빡하게 들어간 모습의 케이블이 탄생한다. 그리고 히팅기를 통해 수축을 시작해 완성한다. 그리고 남는 것은 찝찝한 기름기가 뭍은 양쪽 손. 단자는 지난번 가는 선과 마찬가지로 고급품은 내치고 가장 저렴한 메네키스와 슐터다. 소리도 비싼 단자보다 이게 좋다. 절묘한 매칭일 것이다.

 

 소리를 들어본다. 첫인상은 엄청한 규모의 웅장함이다. 소리가 넘치고 쏟아진다. 역시 굵기가 있으니... 그리고 전해지는 까칠한 고역의 강함이 귀를 자극한다. 결코 나쁜 소리는 아닌데 다소 시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이 지나자 길이 들었는지 차분해지면서 고역이 살짝 숨이 죽는다. 제법 듣기 좋은 소리가 되었다. 생각보다 좋은데. 계속해서 들으니 이게 물건이 아닐까 할 정도로 소리가 기막혔다. 박진감 있는 시원스러운 소리가 아주 명쾌하게 들리면서 주석선 특유의 질감이 아주 매혹적이다. 이것 역시 거의 대박 수준이군. 그러나.....  제작이 거의 불가능하다. 너무도 힘들다. 둘이서 당기고 밀기를 반복해야 되는 그리고 묻어나는 그 기름기와 냄새.

 더 이상 제작은 없다. 아니 다시 할 수 없다. 유일한 나만의 빨간색 듀얼런트 파워케이블의 탄생이다. 그렇지만 소리는 정말 좋다. 지난번 DCA16GA(이 케이블은 아는 한의사가 가져가 잘 쓰고 있다) 확대판이라고 하면 딱 맞을 것이다. 자꾸 보니 모습도 고가품처럼 그럴듯하다. ㅋㅋㅋ

 

 이 기름을 먹인 선재와 같은 선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피복이 기름 먹인 면이 아닌 일반 PCV인 것이다. 앞서 설명한 DCA12GA 600V이다. 가격도 기름 먹인 것에 비해 반 값 정도로 저렴하다. 가격이 싸 소리가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잊어버렸지만 다시 궁금증이 도져 이것도 파워케이블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가격이 저렴하니. 이 역시 단선이라 모두 5미터를 사서 세 등분 즉 1.67미터를 세 가닥으로 꼬으니 약 1.5미터가 나온다. 그리고 역시 메네키스와 슐터의 조합으로 단자를 붙여 주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청음을 해 본다. 고역이 세다. 아니 거칠다. 에이! 돈만 날린 것인가?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정말 거짓말처럼 거친 것이 싹 사라졌다. 소리는 기름 먹인 것과 거의 같은데 다만 음장감이 다소 적게 느껴진다. 그리고 고역도 다소 무디고. 좀 더 빈티지 성향이라 할 수 있다. 기름을 먹인 것이 오히려 현대적이고 비닐 피복이 더 예스런 소리이다.

 이제 듀얼런트 파워케이블의 3종 세트에 대한 궁금증이 모두 해소된 셈이다. 결론은 의외로 좋다다. 모두 웨스턴다운 빈티지 성향이면서 현대적인 면도 빠지지 않은 묘한 매력을 간직한 좋은 선재란 것이 결론이다. 더불어 전체적인 음의 균형감이 좋아 수준급 선재라 하겠다.

 

비닐 피복의 DAC12GA 600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