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전반(또는 분전함)에 있는 차단기를 오디오용으로 바꾸면 소리가 많이 좋아지는데 문제는 어떤 차단기가 좋으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차단기는 큰 대용량(40 내지 50A) 주차단기가 아닌 분전된 작은 용량(20 내지 30A) 차단기를 말한다. 그런데 이런 차단기 중에 음질을 고려한 오디오 전용 차단기는 없다는 사실이다. 아마 최초의 것이라면 일본에서 출시된 극저온 차단기가 있었는데 알아보니 파나소닉 차단기를 극저온 처리한 것이었다. 그래서 같은 파나소닉 제품을 구해 극저온 처리를 해보려고 했지만 파나소닉 제품이 중국산이라 포기한 바 있다. 이 제품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바로 시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혹시 중국제라서? 그리고 최근에는 지멘스나 ABL에서 극저온 제품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업체에서 따로 처리한 제품으로 여겨진다.
최근 폴란드의 기가와트에서는 최초로 오디오용 차단기를 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이것도 오디오용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칼링이라는 회사의 산업용 차단기를 가져와 혹시 극저온 처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기가와트 제품에 보면 옆면에 원래 제작사를 "CARLING TECH"라고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찾아보니 실제로 칼링의 제품과 동일하다.
특이한 것은 이 차단기가 누전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차단기와 누전차단기의 차이는 누전 차단기는 누전, 합선, 과부하 시 모두 차단되고, 배선용 차단기는 합선, 과부하 시 차단된다는 점이다. 더 이상한 것은 기가와트 제품은 한 선만을 끊는 제품이라 두 선에 설치하려면 두 개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한 개짜리를 사서 두 개로 연결(합체)하여 사용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산업용이라는 것이다. 여러 선에 걸쳐 다수로 사용하는.
한편 가격도 묘한 것이 원래 칼링 제품은 개당 4만 원(30A) 정도이다. 산업용이라 수량이 많아지면 가격은 2만 원대로 내려간다. 그런데 기기와트는 개당 135,000원(30A)으로 두 개에 37만 원이 된다. 그리고 크기도 일반적인 것보다 커서 국내 배전반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설치를 하면 뚜껑은 따로 변경해야 되는 번거로움도 생긴다. 하여튼 소리가 좋다고 하는 경우도 있어 호기심이 생기는데, 따로 칼링 제품을 구입하여 들어 보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들리는 평에 의하면 중후한 음감이라고 하니.
이번에는 독일 지멘스 차단기이다. 언제부터가 지멘스 차단기가 좋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개인적으로 구입하거나 공동 구매하여 설치하는 일이 많아졌다. 형번은 "5SV3 312-6"이란 제품으로 용량은 25A 누전 기능이 있고 국내 차단기보다 크기가 큰 제품이다. 그런데 가격이 높아 10만 원대를 훌쩍 넘어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 제품의 입력 단과 출력단의 구별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국내 제품은 위가 입력 아래가 출력인데 이 제품은 반대다 아니다 하는 논란이 있다. 어느 쪽으로 연결해도 전기는 통하지만 고장이 날 확률이 높고 정확한 결선은 아직도 모른다. 이 제품의 음감은 고역이 강해 피곤하는 것인데 이런 것이 처음에는 좋은 소리로 들렸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국내산이다. 국내에는 제품이 무척 다양하다. 현재까지 찾아낸 것은 LS 산전(구LG 구구 금성)을 비롯하여 제일전기(1955년 창업), 진흥(1969년 창업), 대륙(1978년 창업), 상도(1981년 창업), 아남르그랑, 신동아, 서울산전, 광명전기, 동아전기, 태성전기(동일) 등이다. 아마 모든 가정의 배전반을 열어 보면 이들 제품이 장착되어 있을 것이다. 자, 무엇을 선택하면 소리가 좋아지냐 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면 다 사서 들어 보면 될 것이다. 11개이지만 가격은 5천 원 내외로 저렴하니 모두 구입하면 채 10만 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배전반에서 이런 작업을 열 번 이상이나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혹여 반복적으로 교체를 하다 감전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다. 나도 감전 사고를 당한 일이 있는데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서 나는 제품들을 사다가 따로 연결 단자를 만들어 하나씩 청음을 해 보았다. 먼저 희한한 것은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검은색 제품이 회색 제품보다 대체로 소리가 풍부하고 좋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 제품은 검정이고 최근 제품들은 회색이다. 기가와트도 검정, 지멘스는 회색. 자세히 살펴보면 검정 플라스틱이 회색보다 더 딱딱한 재질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옛날의 애자 재질과 비슷하다. 단 한 가지 신동아 제품은 일본 파나소닉과 합작 제품인데 이 제품만이 검은색이다. 물론 소리도 좋다. 그리고 나머지 회색 제품들은 도토리 키재기 수준으로 고역이 강조된 피곤한 음색들이다. 더욱 아쉬운 것은 아남이나 대륙 등이 중국 제조라는 것이다. 소리는 더 열악하다.
여기에 단연 두각을 나타낸 것은 검은색 LG 제품이다. 원래는 금성에서 LG 그리고 다시 LS 산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래서 LS 제품은 회색이고 나머지는 검은색인데 특이한 것은 LS 제품 중 구제품은 검정, 신품은 회색이라는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검은색이 모두 좋다는 것이다. 먼저 음상이 진하고 부드럽다. 그렇다고 해상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듣기 좋은 선명도와 부드러움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구제품에 쓰인 황동의 재질이 요즘 것보다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내부를 열어 육안으로도 그렇게 보인다. 잘은 모르지만.
문제는 어디서 구형 검은색 LS나 LG 제품을 구하느냐는 것이다. 금성이면 더 좋겠고. 방법은 오래된 건물을 철거할 때 나오는 제품 밖에는 없다. 그리고 이들은 수 십 년간 에이징이 되어 소리가 더욱 좋다. 에이징이 되어 좋은 것이 아니라 더욱 좋아졌다는 의미다. 나는 어렵게 10개 정도를 확보했다. 그리고 이것을 극저온 처리를 해서 더욱 음질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최적의 오디오용 차단기가 탄생한 것이다.
그냥 차단기를 쓰면 음질이 더 좋지만 안전을 고려해 누전차단기가 좋고 용량은 크면 좋지만 30A이 적당하다. 20A도 괜찮고. 더불어 크기도 배전반에 딱 맞는 Made in Korea(구) 오디오용 누전차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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