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이야기

강박증 환자가 만든 LUXMAN D-10 CDP

허당수 2021. 3. 31. 22:00

 어느덧 CD 시대를 지나 음원(스트리밍) 시대로 들어섰다. 예전 LP 시대에 CD가 등장했을 때 LP는 끝났다고 했지만 세월이 흘러 오히려 부활하여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음원 시대에서 똑같이 CD가 사라져 가고 있지만 혹시 LP처럼 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런 형극에 나는 CD만을 고집하고 있고 또 제일 음질이 좋다고 믿고 싶고 아니 믿고 있다.

 이러다 보니 씨디 플레이어에 대한 집착이 있고 또 혹시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에 씨디피를 여러 대 가지게 되고 말았다. 이 중 가장 나중에 들어온 것은 럭스만의 최상급인 D-10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실은 이 기기를 들인 것은 3년 전인 2019년 가을이었다. 늘 럭스만 씨디피의 모양이 근사하여 소리는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장터에는 중고 D-10을 보게 된다. 그런데 가격이 엄청 싸다. 혹시 아래급인 D-7이 아닐까 확인했지만 최상급 D-10이 맞았다. 외관도 깨끗하였고 소리를 들어 보니 정상이고 작동도 이상이 없었다. 다만 판매자는 트레이가 가끔씩 오동작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는 정상 동작을 하였다. 집으로 가지고 와 들어 본다. 매끄럽고 고급스러운 차분함이 다가온다. 하지만 좀 싱겁다. 콘덴서를 교체(리캡)할 때가 되었나? 하면서 내부를 열어본다. 콘덴서 주변에 흐른 자국이 있었다.

 평소 잘 아는 수리업자에게 기기를 들고 가니 콘덴서를 고정시킨 접착제라고 하면서 약간은 누액이 흐른 것도 있어 교체를 권한다. 세월이 있으니 마음 편하게 교체를 결정한다. 얼마 후 많은 수의 콘덴서는 교체되었고 트레이도 손을 보았다. 집으로 와 들어 본다. 소리가 억세다. 처음에 들었던 매끄러움이 사라졌다. 그런데 오른쪽에서 음이 찌그러진다. 다시 업자에게 들고 갔다. 컨버터 칩이 나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 폭탄을 구입한 것인가? 그렇다. 그런데 칩(PCM1702)을 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6개월이 흘러도 소식이 없다. 그래서 내가 인터넷을 뒤져 찾게 된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구입하여 업자에게 보냈는데 답이 없다. 세월이 꽤 흘렀다 연락이 왔다 가짜라고! 헐~ 세월이 흘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을 하니 전액은 힘들고 반만 환불을 해 주겠다고 한다. 또 세월이 흘러 1년이 지났다. 업자는 구했다는 말이 없다. 이번에는 이베이를 뒤졌다. 가짜가 많다는 얘기를 들어 환불이 되는 중고를 골랐다. 그놈의 차이나에서. 물건을 받고 업자에게 보냈다. 그런데 또 소식이 없다. 상태를 알려줘야 환불을 받는데 소식이 없다. 2년이 흐르고 3년째 접어들었다. 알아보니 이 업자는 늘 이런 식이라고 한다. 강력하게 하지 않으면 기기를 찾기 힘들다고 해서 집요하게 요구를 해 본다. 계속 미룬다. 겨우 수리를 완료했다고 한다. 1년 전 보낸 칩은 두 개 중 하나만 불량이라고 한다. 환불 불가! 하여튼 3년 만에 고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상한 행태를 보이는 업자이지만 그래서 수리는 제대로 하기에 오래 거래를 했건만 이번에는 완전히 학을 떼었다.

 수리를 마치고 나는 따로 수리비도 지불했다. 이미 콘덴서 교체 비용은 지불했건만 그래도 또 지불했다. 마음 같아서는 수리비가 웬 말이냐 하겠지만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3년에 걸친 수리?

 

 3년 만에 소리를 들어 보니 별 것 아닌 그런 소리다. 처음 들었던 좋은 인상은 온데간데가 없고, 화가 나서 그냥 장터에 싸게 내놓았다. 30분도 안 되어 사겠다고 연락이 온다. 그런데 마누라가 말린다. 떡이 생긴다는 마누라 말을 들어 판매 철회.

 다시 기기를 탐구해 본다. 1925년 설립된 100년이 넘은 일본 회사 제품으로 발매는 1997년 11월이고 가격은 무려 550,000앤이다.(아래급 D-7은 250,000앤) 최상급 모델다운 가격이며 외관도 근사하다. 특히 무늬목 고광택의 뚜껑이 압권이다. 내부도 엄청난 규모로 전원부, 트랜스포트, 컨버터 모두 세 부분이 독립되어 있다. 특히 전원부는 박스인박스로 따로 떼어지고 뚜껑을 열기 위해서는 모두 15개의 나사를 풀어야 한다. 또한 듀얼 전원이다. DAC는 4단 기판을 쌓은 타워 모양이며 외부는 구리 상자로 덮었다. 콘덴서는 럭스만 상호가 붙은 주문품이다. 그래서 교체는 니치콘의 골드로 하였다. 그리고 아래 바닥은 따로 제작한 두터운 고밀도 유리강화섬유플라스틱인 FRP이다.

자세한 사양은 audio-heritage.jp/LUXMAN/player/d-10.html.

 

 전원은 설명서를 보니 100, 115, 230으로 교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교체를 시도하였지만 도무지 전원부를 열어 볼 재간이 없었다. 수리업자에게도 요청했지만 열어 볼 수 없다고 했다. 다시 내가 열어 보기로 한다. 모든 나사를 다 풀었는데 아래 바닥판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나는 가운데 보이지 않은 부분을 접착했다고 생각해 분해를 포기한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전원부의 나사를 풀려면 반드시 전원부를 꺼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꺼낼 방법이 없다. 분해를 포기하고 다시 조립한다. 그렇다면 전압 교체를 어떻게 하지? 또 휴즈가 나가면? 아무리 봐도 열어 볼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본사에서만 열 수 있는 비밀이 있단 말인가? 설마, 이게 무슨 비행기 블랙박스도 아니고....

 며칠이 흘렀다. 심기일전하여 다시 분해를 시도한다. 무려 세 번째이다. 지난번과 같다. 밑에 거대한 바닥판의 모든 나사를 제거하여도 분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가운데 동그란 부분이 있는데 마치 뚜껑 같아 보인다. 이 속에 고정 나사가 있나 하고는 분해를 해 본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 부분을 접착했나? 정말로 미칠 것 같았다. 수리업자의 말이 생각난다. "이거 미친놈이 만든 제품이에요! 수리하는 저도 짜증 나요."

 기기를 뒤집어 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진짜로 밑판을 접착했다면 수리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밑판을 잡고 흔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고장날 일이 없이 만들었다는 것인가? 있다면 완전히 분해 설마! 그러다가 무심코 한 귀퉁이 잡았는데 찌지직하는 소리가 난다. 마치 떨어지는 소리 같은. 어라~ 강하게 한쪽을 잡아당기니 양면 테이프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드디어 밑판이 떨어져 나간다. 할렐루야!

FRP 소재로 만든 밑판

 자세히 살펴보니 세로로 두 줄의 양면 테이프가 있는데 이것이 오래 세월 기기의 무게로 눌러져 있어 강력한 접착력을 발휘한 것이다. 무려 16kg의 본체를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아마도 두 번에 걸쳐 분해를 시도하면서 흔들었던 것이 접착력을 약하게 했던 것이다. 다행인 것은 흔들었을 때 그냥 떨어졌다면 대형 사고가 났을 것이다. 16kg 돌덩이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이 기기는 FRP 밑판 위에 철판을 서로 연결(순동 나사)한 철골 구조를 올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세 등분을 해 전원부,  트랜스포트, 컨버터를 배치하였고 전원부만 따로 컨테이너처럼 독립하여 골조 위에 안착하여 고정시켜 놓은 것이다. 그래서 전원부 자체를 들어내어야만 뚜껑을 열 수 있다.

 

전원부가 분리된다.

 그런데 인렛의 접지 단자가 놀고 있다. 일본은 100볼트를 사용하여 접지가 없다. 전압이 낮아 감전이 되어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100볼트를 쓰는 유일한 나라일 것이다. 물론 미국도 100이지만 정확히는 117볼트이며 접지가 있다. 아큐페이즈 같은 경우도 내수용 100볼트는 접지가 없고, 220볼트인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에는 접지가 되어 있다. 

 

아큐페이즈 E-360 정식수입품, 녹색의 선에 접지 표시가 붙어 있다.

 D-10은 FRP 밑판 한가운데에 모든 접지가 원포인트 방식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외부 접지로 연결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선(OCC 단결정)을 연결하여 인렛에 접지로 연결시켰다. 외부 접지로 빼낸 셈이다. 소리를 들어보니 완전히 신세계인데 이런 것은 아큐페이즈 앰프에서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접지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한다.

놀고 있는 인렛 접지단에 선을 연결했다.
원포인트 방식의 자체 접지, 녹색선이 새로 연결한 접지선

 전압을 변경하여 본다. 230이다. 소리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220볼트에 연결하여 10볼트가 부족한 탓이다. 230이 없으니 포기하고 100볼트로 쓰기로 한다. 전압 변경은 점프선으로 하는데 이 선(22AWG, 두께 0.6mm)이 부실해 보여 바꾸어 본다. 먼저 네오텍 단결정 동선으로 바꾸었지만 먼저 부족한 느낌 그래서 네오텍에서 나온 미터당 33만 원짜리 단결정 순은선(14AWG, 두께 2mm)으로 변경해 본다. 길이가 짧아 부담이 없다. 원래 연결은 몰렉스(MOLEX)의 하우징 커넥터이지만 따로 U로 만들어 양쪽에 후루텍 순동 금도금 패스톤 단자를 연결했다. 헐겁지 않게 조정하여 잘 연결하여 본다. 순은선 특유의 고역 해상력이 엄청나게 살아난다. 그리고 하루 정도의 에이징을 거치자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완전히 놀라움 자체라서 럭스만이 이런 소리였나 싶다. 극적 반전이다.

단결정 순은선과 후루텍 패스톤 단자로 만든 점퍼
왼쪽이 원래 점퍼선, 오른쪽은 단결정 구리 선재로 만든 점퍼선

 다음은 휴즈다, 그런데 모두 네 개나 된다. 오리지널 리틀 휴즈다. T0.2A 두 개, T1.25A 두 개로 모두 네 개. 하이파이튜닝 휴즈로 교체하여 본다. 그런데 0.2, 1.25 두 개만 연결해도 되고 네 개를 모두 끼워도 작동한다. 아마 듀얼로 전원을 공급하는지 도통 무슨 이유인지를 정확히 모르겠다. 또한 방향도 없다. 그래서 네 개를 모두 조합하여 가장 좋은 소리로 방향을 결정한다. 두 개만 끼워도 소리는 나지만 네 개를 끼우니 더욱 질박한 소리가 나 모두 네 개를 끼우기로 한다. 휴즈 값만 무려 20만 원이다. 한편 교체를 하면서 외부 나무 뚜껑을 열어 놓았는데 개방적이라 이게 소리가 더욱 좋다. 럭스만은 나무 덮게를 주로 쓰는데 이걸 쇠로 따로 제작하여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나무의 경우 은은한 부드러움이 장점이나 다소 답답하게도 느껴진다. 그리고 내부 철판 뚜껑(전원부와 트랜스포트)은 닫았을 때가 좋다. 또한 내부 선재를 정리한 케이블 타이(PANDUIT 제품)를 제거(10개 정도)하면 잔향이 살아나 소리가 좋아진다. 모두 진동하고 상관이 있다. 참고로 픽업은 소니 KSS-240인데 중급품이라 다소 아쉽지만 지금에서는 구할 수가 있는 제품이라서 오히려 다행이다.

 

하이파이튜닝으로 교체된 네 개의 휴즈
많은 수의 케이블 타이를 제거하고 하나만 남겼다. 두 개의 타워 DAC가 보인다.

 접지 연결, 전압 점퍼선과 휴즈를 교체하니 완전히 따른 기기처럼 소리가 놀랍게 변한다. 처음에 들었던 매끄럽고 고급스러운 특징도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주의할 점은 밸런스 출력 단자가 일반적인 2번 핫, 3번 골드가 아닌 아큐페이즈처럼 2번이 콜드, 3번이 핫으로 뒤집어져 있다. 아큐의 경우 단자 옆에 이런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럭스만은 사용설명서를 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들었고 나중에서야 이런 사실을 알고는 앰프에 위상 변환 스위치를 통해 들으니 더욱 좋은 음질을 접하게 되었다.

 D-10은 소리 경향은 음장감이 넓으며 음색이 다부지고 단단하다. 더불어 차분하지만 고급스러운 질감을 갖춘 놀라운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다만 출력이 적어 처음 들으면 답답함이 전해지기도 하는데 실제로 출력이 2V(통상 2.5V)라 낮다. 혹시 차분함을 위해 의도된 것인가? 또한 전체적인 만듦새는 거의 정신병자 수준이라 소리가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는 CD가 사양길이라 이런 기기를 다시는 만날 수 없기에 고이 간직하며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다. 소리도 좋고 모양도 근사하니 말이다.

 흔히 럭스만은 부드럽기만 하다는 것인데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지금까지 이런 럭스만은 없었다. 럭스만인가 럭스맨인가 ㅋㅋ

 

왼쪽이 컨버터부, 중앙이 트랜스포트(두껑을 열은 상태), 오른쪽은 전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