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이야기

크렐 프리 KRC-HR 사용 설명서

허당수 2021. 3. 11. 22:54

  유명하다고 알려진 오디오 기기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성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것들에 신경을 써 주면 더욱 나은 성능을 발휘하지만 모두들 그냥 한 번 연결해 보고는 섣불리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부터 크렐의 최상위 프리 앰프인 KRC-HR의 성능을 최고로 이끌어 내는 비결을 소개한다.

 이 앰프는 1996년부터 99년까지 발매된 크렐 프리의 최상위 기종으로 당시 발매가는 6,900달러였고 일본에서는 110만 앤에 판매된 고가의 제품이다. 1994년까지 발매된 마크 26 프리가 6,500불이었으니 꽤나 비싼 프리였다. 물론 마크 26S는 이보다 비싸 8,500불이었다. 하여튼 크렐로서는 마크에 대적하는 물건으로 야심 차게 내놓은 것이었지만 마크 26보다는 조금 못한 그런 기기로 평가를 받고 만다.

 사실 단 다고스티노가 만든 크렐 앰프는 파워가 더 유명했고 그래서 프리는 별로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편견으로 워낙 파워의 성능이 좋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리에 대한 관심이 덜했던 것이다. 나는 최근 운 좋게도 마크 26과 크렐 KRC-HR를 차례로 구할 수 있어 이들을 비교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마크보다는 떨어지는 그런 기기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마크와는 또 다른 개성을 지닌 좋은 기기로 남게 되었다.

 처음 기기가 들어왔을 때 첫인상은 거칠고 벙벙대는 그런 소리로만 들렸다. 또 사실 그랬고. 하지만 모든 기기들은 운송 후 바로 들으면 뭐가 어수선한 음질을 들려주는 것이 사실이고 적어도 한두 시간 아니면 하루쯤 지나야 온전한 소리를 들려준다. 이 기기는 마크와 마찬가지로 전원부가 분리되어 있다. 마크는 레모선으로 연결되고 크렐은 벨덴선으로 연결되는데 마크는 길이가 짧아 보통 같이 위치시키지만 크렐의 경우 선의 길이가 1미터 넘어 아주 먼 곳에 전원부를 따로 분리시킬 수 있다.

 일단 열어본다. 듀얼 전원부인데 인렛 단자의 접지가 그냥 놀고 있다. 크렐이 접지를! 아니 다고스티노 같은 사람이 접지를 빼먹었다니 하면서 접지극에 전선을 납땜하여 기판 나사에 접지를 해 주었다. 그러고 들어 보니 벙벙대는 소리가 잡히고 안정감 있는 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휴즈를 빼어 본다. 32mm 지연형인데 용량이 1 1/4라고 쓰여 있다. 일과 사분의 일이면 1+0.25=1.25A 특이한 용량이며 또 프리 앰프 치고는 꽤나 큰 용량이다. 200와트(220x1.25)가 넘어가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소비전력은 약 50W 정도로 프리치고는 열이 꽤 나는 편이다. 하여튼 휴즈 박스도 부스만(BUSSMANN)이고 휴즈 역시도 부스만이라 원래 오리지널 휴즈로 추정된다. 휴즈가 교체되었다면 사고를 의심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휴즈 용량은 전원부 그 어디에서 쓰여 있지 않았다.

 

인렛에 따로 연결된 접지(이중 접지가 된 셈이다)
전압은 200볼트로 표기했지만 휴즈 용량은 없다.

 하여튼 접지 후 소리가 좋아졌지만 그래도 그 거칠고 투박한 소리는 여전했다. 이게 크렐 프리의 소리인가? 물론 거칠다고 표현은 했지만 결코 귀에 거슬리는 거친 것이 아니라 질감이 있는 것인데 그것이 다소 투박하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크렐의 소리이기는 하지만.

 휴즈를 바꾸면 투박한 것이 없어질 듯 보였다. 먼저 용량이 적은 막휴즈를 끼워본다. 용량이 작아지니 다소 얌전해 기지는 한다. 하지만 막휴즈라 선명도가 떨어진다. 이때 생각나는 것이 영국제 AMR 휴즈인데 다소 물렁한 음색을 들려주어 선호하지 않지만 크렐의 투박한 소리에 오히려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용량은 1.25A가 없고 1.6과 1A 중에서 1A로 골랐다. 들어 보니 투박한 것이 없어지고 다소 나긋해진다. 휴즈와 접지를 해결 했으니 다음은 단자의 청소다. 특히 밸런스 단자를 알코올로 잘 청소해 주고 접점 부활제를 바르니 해상도가 올라간다. 이렇게 며칠을 들으니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소리가 나온다.

 이번에는 파워케이블에 신경을 써줄 차례다. 그런데 내가 쓰는 프리용 파워케이블은 100볼트용이다. 크렐을 위해 단자를 교체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크렐의 전압을 변경해 주어야 한다. 나는 크렐 본사에 문의를 했다. 휴즈 용량과 함께. 답변을 기다리는 사이 전원부를 다시 열어 본다. 전압 변경 스위치가 세 개가 있는데 숫자 1과 2로만 변경되는데 이렇게 되면 모두 일곱 가지 경우가 나온다. 원래는 222로 되어 있어 220볼트인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111인 경우가 100볼트이다. 크렐사에서 온 답변을 확인하니 212면 미국 전압인 117볼트이고 휴즈 용량은 1.25A라고 한다. 휴즈 용량은 전압에 따라 변화는데 크렐은 그냥 한 가지로만 하는 것 같다. 미국 기준으로 117볼트 1.25A이고 220볼트면 반 값인 0.6A정도가 된다. 그래서 막 휴즈를 통해 시험을 해 본니 0.5A에서 끊어지는 것으로 보아 220볼트면 0.6A가 적정 값이다. 물론 1.25A를 그대로 써도 문제는 없다. 유사시 좀 위험하긴 하지만.

 

빨간 스위치가 222이면 220볼트. 오른쪽 인렛 단자의 접지단이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판에 접지가 된다.
미국 전압인 117볼트로 연결

 117볼트로 바꾸고 좋은 파워케이블을 연결하니 좀 더 좋은 소리가 된다. 220볼트와 차이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미국 전압인 117볼트가 더 좋게 들린다. 물론 추측이겠지만. 같은 파워케이블로 단자와 휴즈를 바꾸어 음질 차이를 정확히 비교하는 것이 맞지만 번거로운 작업이라 그냥 포기한다. 이렇게 되니 이제는 휴즈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AMR에서 하이파이튜닝으로 바꾸기로 한다. 용량은 117볼트에 1.6A로 하고 바꾸어 본다. 원래 1.25A보다 크니 소리도 더 좋을 것이다. 교체 후 들어 보니 하이파이튜닝 특유의 해상력과 따스한 질감이 더욱 향상된다. 또한 이 휴즈는 50시간 정도 에이징 시간을 거치면 더욱 진하고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 특이한 것은 마크 앰프들은 휴즈가 리틀이고 크렐은 부스만인데 음질도 마크가 리틀과 같이 섬세하고 크렐은 부스만과 같이 굵은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마치 휴즈의 음색을 알고 있어 선택한 것과 같이.

 

왼쪽이 AMR 1A, 오른쪽은 원래 부스만 1.25A
하이파이튜닝 1.6A 휴즈 아래 뚜껑쪽이 뉴트럴이다.

 그런데 전압과 휴즈를 교체하면서 접지를 다시 점검하여 보니 인렛 단자가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판으로 접지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설마 다고스티노 같은 인물이 접지를 안 할 턱이 있다. 그렇다면 내가 연결한 접지는 착각이었던 것인가? 혹시나 해서 다시 떼어내고 들어 본다. 소리가 이상하다. 결론은 이렇다. 원래 접지가 되어 있지만 인렛에 외부로 노출된 단자에 다시 한번 접지를 하니 음질은 더욱 좋아진 것이다. 내 귀가 정확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중 접지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마지막 향상 비법이다. 놀고 있는 단자들을 틀어막는 것이다. RCA 입력단은 쇼트핀으로 막고 출력단 단자는 마개만 씌운다. 그리고 HRC는 밸런스 입력단이 두 조라 한 조만 연결하니 한 조는 놀게 된다. 그래서 쇼트핀을 연결하여 준다. 이상한 것이 쇼트핀은 잡음 유입 방지이지만 단자에 따라 음질이 변한다. 일본에서도 고가의 밸런스 쇼트핀이 출시되는 것으로 보아 음질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맞다. 나는 뉴트릭 단자에 단결정 선재를 연결하여 꽂아본다. 역시 일반핀보다 더욱 선명하고 진한 소리가 된다. 아마도 선재와 뉴트릭 단자가 입력단에 삽입되어 진동을 잡아준 결과로 여겨진다. 그리고 앰프 자체의 진동을 잡아주는 스파이크의 사용은 금속재와 흑단콘을 적용하여 보았는데 모두 크렐 특유의 질감이 줄고 고역의 선이나 가늘어지는 단점이 들어나서 그냥 원래의 고무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뉴트릭 단자를 이용해 만든 쇼트핀, 파란색선이 단결정 선재

 정리해 보면 이중 접지와 오디오용 휴즈 교체가 음질 향상의 비법이고 쇼트핀들은 최종 튜닝이라 볼 수 있다. 사실 동급의 마크 26과 비교해 보면 마크가 고역의 투명도는 낫고, 해상력과 질감은 크렐이 앞선다. 다만 음장이 다소 좁아 마크보다는 답답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고역에서는 마크가 단단하고 투명하다고 하면 크렐은 해상력이 좋고 음의 두께가 두꺼워 질감이 매우 좋다. 그리고 그 질감이 매우 고급스럽다는 것이다. 이게 크렐의 강점이라 하겠다. 물론 접지와 휴즈를 바꾸지 않으면 다소 둔탁하여 마크보다 떨어지는 기기로 생각하기 쉽다.

 

밸런스단(B-1)과 RCA단을 쇼트시켜 놓았다.

 한편 마크 26과는 달리 KRC는 밸런스 입력과 포노단을 동시에 쓸 수 있다. 원래 이게 정상이고 마크가 이상한 경우가 맞다. 그리고 또 마크와는 달리 포노단도 MM, MC 모두 쓸 수 있는 겸용이다. 특히 포노단의 두툼한 질감이 소리가 아주 인상적이다. 이번에 구한 내 KRC는 포노단이 옵션으로 달린 것이고 상태도 정말 좋았다. 외관도 아주 좋고. 다만 리모컨의 나사가 하나가 없었지만 운 좋게 미국 인치 나사를 구해 모두 바꾸어 다행이었다.

 

왼쪽이 포노기판으로 가운데 빨간 딥스위치를 통해 MM MC로 전환. 오른쪽 볼륨은 광학식 전자 볼륨으로 아나로그와 같은 동작을 한다.

 크렐 KRC-HR는 리모컨이 되고 풍부한 옵션이 장점이며 마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질감과 호방한 해상력의 음질이 단연 돋보인다. 섬세함에서는 마크이지만 두툼한 음감의 시원스러운 소리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볼륨 노브에 흰색 플라스틱은 내가 만들어 붙인 것이다. 볼륨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