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이야기

미치광이의 2천만 원짜리 케이블

허당수 2021. 10. 15. 21:02

썬샤인 SPL1000A 파워케이블(관세 때문에 아무런 표시가 없다)

어느 날 오디오에 관련된 인터넷을 보다가 우연히 찾은 사이트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광고 문구를 읽게 된다.

 

 "세상에는 하나에 2천만 원이라는 미치광이처럼 고액의 전원 케이블도 나돌고 있어 그 전원 케이블을 넘어서려 개발된 것입니다. 여기의 TPL-2000A도 고가이기에 진정한 세계 제일의 오디오용 전원 케이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2천만 원짜리 케이블의 후루텍 플러그는 두 세대 전의 것입니다. 가격에 관계없이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평소 수천만 원짜리 케이블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미쳤군 하는 말을 늘 지껄이곤 했다. "오디오는 구라로 시작하여 구라로 끝난다"는 말처럼. 그런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반가웠는데 그것이 바로 케이블 제조업자라는 사실에 다시금 더 놀라게 된다. 그럼 지금부터 자세히 알아보자.

 위의 광고 문구는 다음 사이트에서 발췌한 것이다. http://sunshine-kr.com/premium-cable/

 

premium cable – SUNSHINE

SPL1000A1.2 길이 1.2M SPL1000A1.8 1.8M 플러그 FURUTECH NCF48 (형상은 한국 사양 플러그 사진은 참고사진인 일미식플러그 입니다. 실제로는 Schuco플러그인 한국 유럽식형상 플러그입니다.) 도체 DIP FORMING

sunshine-kr.com

 이 회사는 썬샤인이고 우리나라에서 소개되고 있는데 중요한 기술은 마그네슘 쉴드를 채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 몇 종의 파워케이블을 출시하고 있는데 가장 비싼 것이 94만 원이다. 오디오 매체에서 시청평도 나오기는 하였지만 꽤 좋다 정도였다.

 나도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일본 본사 사이트를 검색하게 되었는데 바로 위의 광고 문구가 있는 것이었다. 또 다른 구라일까 아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결코 구라일리는 없어! 무언가 진정성이 보였다. 그래서 국내 수입상에 연락을 하였다. SPL1000A 케이블을 사고 싶으니 본사에 주문을 해 달라, 그런데 수입상은 전혀 모르는 모델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알아봐 달라 했다. 며칠 후 왜 그런 케이블을 사려고 하느냐 반문했고 위의 광고 문구를 보고 사려고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물건을 팔려면 무슨 말을 못 하겠느냐? 진짜 좋은 케이블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면서 나의 주문을 완강히 거절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사이트를 뒤져 본사에서 주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과감히 주문을 하게 된다. 한번 속아 보지 하는 심정으로 물론 금액($1,540)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너무도 궁금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메일을 써 내가 왜 주문을 하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썬샤인에서도 주문에 관련된 상세한 정보를 보내 주었고 몇 주만에 물건을 발송하여 주었다. 더불어 관세가 걱정되어 상품의 가격을 20%로 낮추어 주겠다고 전해왔다.  20%면 무관세로 들어올 수 있는 가격이었다. 그들의 배려가 고마웠고 며칠 후 정말로 세관을 무관세로 통과하여 우편으로 배송이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바로 청음을 하여 본다. 비교 대상은 보복스의 엑셀수스 파워케이블.

 

보복스 엑셀수스 파워케이블 가격은 50만 원대이지만 성능은 몇 백을 상회한다.

 첫인상은 확 트이는 듯한 개방감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도 한없이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마치 박하사탕처럼 아삭아삭하는 질감 또한 좋았다. 그리고 깊은 무대감과 펼쳐짐 그리고 제법 단단함이 있는 그런 소리였다. 좋은데? 하지만 뭔가 한방이 없어 보였다. 참 비행기 타고 왔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소리가 제자리를 잡겠다 싶어 하루를 기다렸다. 다시금 보복스와 비교하여 본다. 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나 한 체급이 올라감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면에서 상급의 소리였다. 과연 허풍이 아니었군. 이렇게 며칠을 듣다 다시금 원래 보복스로 돌아가 본다. 엄청난 차이가 금방 다가온다 거의 대박 수준이었다. 물론 2백 가까이 하는 가격은 싼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말대로 2천만 원짜리 소리처럼 들렸다. 아니 더 좋았다.

 자 그렇다면 그들이 언급했던 미치광이 2천만 원짜리 케이블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후루텍 단자가 두 세대 전이라는 설명에서 착안을 해 본다. 실텍이 떠오른다. 실텍 파워 케이블은 후루텍이 NCF를 개발하기 전의 플러그를 채택하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카본, NCF를 차례로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나도 그래서 고가의 케이블 치고는 플러그가 너무 싸구려다란 생각을 했었다. 그럼 2천만 원짜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트리플 크라운 파워케이블로 여겨진다. 현재 NCF 단자 버전이 2천8백 정도 하니. 국내에서 이 케이블의 사용자는 드물고 보통 루비 힐이나 마운틴을 주로 쓰는데 이것의 가격만도 무려 6백만 원이나 된다. 그런데 중고 거래가 활발하다. 하루에 몇 건이 올라온 경우도 있었다. 왜 그럴까? 좋으면 나오지 않을 것인데, 그렇다면 소리가 좋지 않아서... 하여튼 의문이다. 나도 루비 마운틴을 들어 보고 싶지만 중고 사기가 쉽지 않았다. 인기가 좋으니.

 한편 후루텍 FP-S55N란 케이블이 있다. 보복스 엑셀수스와는 비교조차 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무슨 군인 자작 버전을 소개할 때 광고처럼 이런 평이 등장한다. "루비 마운틴과 용호상박이다" 거의 대등하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엑셀수스가 트리플 크라운 수준이 되는 것인가? 차근히 족보를 정리해 보자 후루텍이 엑셀수스보다 한참 떨어지는데 후루텍이 루비 마운틴 수준이다. 그리고 엑셀수스보다 좋은 썬샤인 SPL1000A. 결국은 2천만 원짜리인 트리플 크라운이 썬샤인에는 상대가 되지 않은 셈이다. 심한 비약일지는 몰라도 정리를 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루비 마운틴(=후루텍) -> 엑셀수스 -> 트리플 크라운 -> 썬샤인(티굴). 나중에 루비 마운틴을 내가 직접 들어보면 더 명확해질 것이다.

 

Tiglon TPL-2000A
실텍 트리플 크라운 파워케이블

 그럼 썬샤인 SPL1000A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보자. 이 케이블은 썬샤인의 자체 모델이 아닌 일본 TIGLON(티굴)의 OEM 모델로 최상급 TPL-2000A란 모델을 가져와 SPL1000A로 출시한 것이다. 썬샤인 사이트에 소개되고 있는 흰색의 후루텍 FL-48은 100볼트용 일본 버전이고 주문을 한국에서 하니 플러그를 220볼트용 FL-50으로 해 준 것이다. 외부 색상도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바꾸어서. 그리고 가장 큰 차이점은  티굴에는 장착된 필터 같은 절연체가 빠져 있다. 두 모델이 똑같으면 안 되니. 결국 내가 산 것은 썬샤인에서 티굴에 OEM을 한 것이었다. 덕분에 가격이 꽤 저렴하다.

 나중에 나는 국내에 정식 수입된  티굴의 TPL-2000A란 모델을 더 비싼 가격을 주고 구매하게 된다. 그리고 썬샤인과 일대일로 비교하였다. 절연체 같은 필터 차이가 제법 났지만 워낙 소리가 좋으니 비교 시에만 느껴질 정도였다. 알아보니 티굴의 TPL-2000A는 이미 일본에서 오디오상을 받은 유명한 것이었다. 이들이 자랑하는 기술은 마그네슘 쉴드와 딥 포밍(Dip Forming-OFC) 제조인데 딥 포밍은 단결정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실텍도 상급은 단결정이다.(국내 솔리톤에서 공급을 하였고 지금은 대만에서 공급을 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케이블 하나에 2천만 원을 주고 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썬샤인의 말대로 미친 짓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썬샤인(티굴)을 선택하였고 한없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2천만 원짜리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