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이야기

내가 FM 방송을 듣지 않은 이유

허당수 2019. 12. 28. 08:54

 

93.1을 잘 잡는다고 하는 특수 안테나 상품

 

 

 나는 FM 방송을 듣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해 듣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들었었다는 얘기다. 왜 과거형이 되었을까? 고교 시절 들었던 고 한상우 선생님의 <나의 음악실>은 나를 클래식의 숭배자도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프로그램이다. MBC FM의 이 프로그램은 낮 11시에 방송되어 방학 때만 들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오아시스와 같은 독보적인 존재였다. 당시 한상우 선생님은 나에게 신적인 존재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 클래식 방송 진행자에 대한 꿈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1979년부터는 KBS FM에서도 클래식 전용 방송(1FM 93.1)을 통해 온종일 클래식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시대가 열리게 된다. 덕분에 방송을 통해 나는 클래식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후 나는 음반을 통해서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또한 90년대 이후부터는 클래식 음반 시장 활성화로 세계의 거의 모든 음반을 접하게 되어 그야말로 클래식의 르네쌍스 시대를 맞이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방송보다는 많은 좋은 음반을 통해 클래식을 접하게 된다. 또한 어느 때부터인가 KBS FM이 정통 클래식이 아닌 크로스오버나 다른 유사한 대중 음악에 치중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방송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또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열악한 수신 환경도 큰 방해 요인이기도 했는데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고 또 해결하지도 않는다.

 세월이 더 흘러 내가 클래식 전문가가 되어서는 아예 KBS FM에서 구성작가로 일을 하게 되지만 진행자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그 이유는 타의에 의한 것도 있지만 내 주변머리가 방송에 너무도 부적합한 인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련을 말끔히 버리게 된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고 있고 싶지도 않았다. 오랫동안(22년) 클래식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고 김범수 선생님(음악의 산책, 명연주 명음반, 음악의 향기 등 진행)이 방송국에서 투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해 무서운 곳이라는 생각마저 갖게 된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현재 KBS 1FM을 그냥 "KBS 클래식 FM"이라고 부르는 것도 내가 당시 직접 제안한 것이었다.

 하여튼 클래식 음악 방송은 KBS FM에서만 들을 수 있었고 여타 방송국들은 아예 없어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KBS마저도 잡탕밥이 되어 버렸고. 이에 나는 옆 동네인 93.9 CBS FM을 기웃거리게 된다. CBS가 좋았던 것은 월등한 수신 환경이었는데 먼저 클래식 프로가 아닌 팝송 프로그램으로 재미를 붙이게 된다. 이런 것은 클래식에 눈을 뜨기 전 팝송 프로에 몰입했던 예전의 추억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곧 식상하게 되고 클래식 프로는 정통 클래식이 아니었기에 얼마 듣다 말아버렸다. 이런 시절 나는 좋은 소리를 위해 여러 종의 좋다고 하는 유명 튜너를 섭렵했지만 결국 모든 튜너를 처분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방송을 들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짜증나게 잡히지도 않은 KBS FM 93.1 수신을 위해 여러 특수 안테나까지 동원했던 일이 부질없는 것이 되었고 오히려 속이 다 시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여타 세계의 클래식 방송은 해설이라 것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저 단순한 곡명 소개 정도가 다다. 우리나라의 해설은 초보자를 위한 해설이라기보다는 많이 아는 자가 마치 선생님처럼 거만하게 가르치려고 드는 느낌이다. 물론 청취자들 중에는 초보자도 있다 하지만 많은 지식을 가진 이도 있다. 하지만 방송은 무조건 국민을 어리석은 자들로만 취급한다. 방송을 듣는 문제는 내가 능동적으로 생각하여 원하는 클래식 곡을 선곡하여 듣느냐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방송에서 나오는 곡을 듣는 수동적인 인간이 되는냐 하는 문제다.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남은 던져주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먹이감을 받아 먹지 말고 내 스스로 더 좋은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방송을 듣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프랑스 철학자 폴 브루제는 말한다.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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