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이야기

인디언의 여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한 미국 병사

허당수 2024. 8. 8. 21:36

가르미슈 슈트라우스 저택

 

1987년 랜시의 녹음

 


 미국의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평화롭게 오보를 불던 수석주자 존 드 랜시(John de  Lancie, 1921~2002)는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다행히 그는 죽지 않았고 전쟁도 승리로 돌아가 점령군이 되어 1945년 4월 가르미슈의 한 으리으리한 저택을 찾아가게 됩니다. 이 집의 주인은 유명한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였습니다. 점령군은 그 집을 빼앗아 군사적 목적으로 징발할 요량이었습니다. 하지만 슈트라유스는 미국 군인들 앞에서 독어가 아닌 불어로 당당히 외칩니다. "나는 <장미의 기사>와 <살로메>를 작곡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다!" 이를 알아본 군인들은 집을 빼앗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음식 등을 건네게 됩니다. 이렇게 친해진 뒤 그 참전 군인인 랜시는 슬쩍 오보 협주곡을 의뢰해 보는데, 보기 좋게 단박에 거절을 당하게 됩니다. 이게 끝인 줄 알았지만 노작곡가는 바로 작곡에 착수하여 불과 5개월 만인 9월에 곡을 완성하게 됩니다. 은퇴한 자신을 알아봐 준 것에 감격했는지 그는 말로는 거절했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붓을 들었던 것입니다. 곡을 완성한 뒤 랜시를 찾았지만, 이미 그곳을 떠난 고국으로 돌아간 뒤였습니다. 결국 곡은 1946년 2월 스위스의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악단의 수석인 사일레(Marcel Saillet)에 의해 초연되고 란시는 그런 사실을 모른 채 귀국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곡은 같은 해 9월 레온 구센스(
Léon Goossens)에 의해 영국 초연이 되었고 또 1947년 세계 최초의 녹음을 남기게 됩니다.
 얼마 후 랜시와 같이 참전한 동생으로부터 형이 의뢰한 곡이 작곡되어 초연되었다는 오키나와 신문 기사를 전하게 됩니다. "81세의 슈트라우스가 미국 병사의 제안으로 오보 협주곡을 작곡하다." 비로소 그는 자신을 위한 작품이 탄생했음을 뒤늦게나마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슈트라우스와 연락이 이루어지게 되고 작곡자는 랜시에게 초연을 부탁하게 됩니다. 하지만 랜시는 당시 피츠버그 심포니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부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뒤였습니다. 원래 피츠버그 심포니 수석에서 왜 다른 악단의 부수석으로 간 것일까요? 아마 추정컨대 피츠버그 심포니의 독재자 프리츠 라이너(Fritz Reiner)를 피해 오먼디(Eugene Ormandy)의 필라델피아로 간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그래서 그는 부수석인 관계로 독주 협연을 할 수 없어 다른 이에게 초연 권한을 넘기게 됩니다. 그래서 CBS 심포니의 수석인 밀러(Mitch Miller)가 미국 초연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1964년 필라델피아 수석인 된 그는 오먼디와 비로소 곡을 연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곡이 작곡된 지 42년이 흐른 뒤 나이 예순여섯인 1987년 녹음을 남기게 됩니다. 녹음에는 실내악단이 협연을 하게 되는데 이름도 없는 악단이고 지휘자 역시 RCA의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녹음 제작자인 맥스 윌콕스(Max Wilcox, 1928~2017)가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연주 수준은 대단한  것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고로 곡은 1948년 수정되었지만 랜시는 실내악적인 울림이 있는 원본을 녹음하였습니다.

 이런 랜시의 연주는 마치 노작곡가와의 소중한 인연을 추억하듯 감동적인 명연주를 펼치고 있습니다. 서정적인 선율 속에는 인간적 흐뭇함이 서려있고, 특히 2악장 안단테는 그 당시를 회고하는 듯한 애절함과 그리움의 필치가 잔잔한 감동으로 이어집니다. 더불어 랜시의 아름다운 마음의 흔적이 묻어납니다. 참으로 감회가 새로울 일이며 한 편의 소설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피어난 참전 군인과 노작곡가의 소중한 인연은 사람의 따스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뒷방 늙은이 신세였던 슈트라우스 개인의 인디언 여름을 떠올리게 됩니다.

 랜시는 비록 음악가였지만 참전을 하였고 그 덕에 슈트라우스로부터 곡을 받았고 또 프랑스에서는 아내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운동선수나 음악가들에 대해 병역 면제 혜택(?) 주고 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안 드시나요? 왜 면제일까요? 독립운동을 하고 싶은데 너는 훌륭한 음악가나 운동선수여서 안 된다? 목숨을 받쳐 나라와 가족을 지키는 것을 숭고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막는다.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안중근과 이순신이 훌륭한 인재라서 병역 면제를 받는다고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나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슈트라우스와 랜시, 194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