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아주 오래된 턴테이블이 있다. 데논 DP-67L. 1984년 구입하였으니 올해로 39년째다. 인켈 턴테이블에서 바꾼 것인데 다시 바꾸지 않아 현재까지 쓰고 있다. 물론 가라드에 대한 미련이 있으나 바꿀 일은 없을 것이라 다짐해 본다. 왜? 지금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몇 년 전 이사를 하면서 오랫동안 모아 온 LP를 너무 큰 부피 탓에 천 장 이상을 판 적이 있다. 소장할 명반 이백 여 장만 남긴 채 모두 처분했다. CD를 듣게 되면서 LP를 거의 듣지 않게 되었던 이유에서이다.
그런대 올해 우연한 기회에 모사이트에서 싸게 파는 데논 DL-103R 바늘을 보게 된다. 물론 익히 바 왔던 것이지만 원래 쓰고 있던 오디오테크니카 OC3에 만족했기에 또 LP를 거의 듣는 일이 없기에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늘 103이 궁금했다. 가장 많이들 쓰는 또 1962년 발매되어 된 지 무려 60년 이상 장수하는 베스트 셀러의 유명한 것이기에. 가격은 40만 원대의 제품으로 현재와 같은 LP 부활의 시기에는 입문용으로도 보이는 그런 바늘이다. 물론 나에게는 고가로 보인다. 그래서 할인되는 제품을 사게 된다. 드디어 그 궁금증을 해소하게 될.
한참을 씨름하여 톤암에 장착을 하게 되고 무게 등을 잘 맞춰 소리를 듣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해상력이 더 나은가? 하는 정도였다. 오히려 OC3이 더 좋게 들린다. 그래서 다시 OC3을 끼워본다. 내가 지금껏 들었던 소리가 겨우 이거였던가 할 정도로 형편없는 소리다. 다시 103R을 끼운다. 역시 명성대로 좋은 바늘이군!
새로운 바늘을 장작하였으니 그동안 듣기 않던 LP들을 폭풍 감상하게 된다. LP만의 풍부하고 진한 감성이 밀려온다. 오래간만에 느껴 보는 추억과도 같은 LP가 마냥 흐뭇했다.
그런데 데논 턴테이블의 스위치가 조금 틀어진 것이 보인다. 물론 사용에는 지장이 없지만 바로 잡고 싶었다. 뜯어보기로 한다. 턴테이블은 모든 장치가 아래에 붙어 있어 작업을 하려면 뒤집어야 한다. 그런데 뒤집다가 사고를 치게 된다. 받침이 허술하여 미끄러지면서 표시창이 떨어져 나갔다. 헉~ 깨지지는 않아 다시 잘 붙이면 될 듯했다.
스위치를 분해해 보니 스프링을 고정하는 기기 플라스틱이 오래되어 부러진 것이다. 그런데 옆을 보니 고정할 홈이 있어 거기에 고정하니 잘 동작이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조립을 하니 스위치의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다시 뜯어보니 전구가 나간 것이었다. 급한 대로 45회전은 쓰지 않으니 그것과 교체를 한다. 다시 조립을 하니 옆에 스위치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어~ 오비이락? 잘 살펴보니 너무 오래된 필라멘트식 전구가 충격으로 차례로 끊어지는 것이었다. 결국 네 개 중 세 개가 사망한다. 39년 만에.
전구를 수소문해 본다. 이제는 LED 시대라 소위 에디슨이 만든 필라멘트식 전구를 거의 찾아 보기가 힘들다. 아는 수리상을 통해 세운상가에서 파는 곳을 알아낸다. 부라부랴 달려가 본다. 정확한 볼트수는 알 수 없었고 그나마 재고도 12V 한 종류만 있었다. 장착해 보니 너무 밝다 은은한 것이었는데. 알리를 뒤져본다. 다양한 종류가 있다. 결국 4mm 9V임을 알아내고 장착하여 보니 밝기가 딱 맞는다. 중국제라 수명을 장담할 수 없어 여분으로 10개를 구입했다.
다시 턴테이블을 잘 조정하여 103을 들어 보니 너무도 훌륭한 소리임을 알게 된다. 명성에는 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고수들에게는 그저 그런 바늘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 귀에는 엄청난 소리로 들린다. 그러던 차에 고에츠 중고를 보게 된다. 잘 아는 가게라 먼저 가지고 와 들어 본다. 스가노옹의 아들이 만든 로즈우드 시그너쳐다. 103이 이 정도니 코에츠는 얼마나 좋을까 하고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마치 모노처럼 들리는 탁한 소리였다. 이게 고에츠였던 말인가? 혹시 수리한 중고가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결국 고에츠를 포기하게 된다. 나의 귀에는 103이 훨씬 좋게 들렸기 때문이다. 누가 그런다. 스가노옹이 기술은 아들에게 물려주었지만 소리는 전해 주지 않았다라고.
이에 나는 다시 103과 더불어 각종 악세사리에 신경을 쓰게 된다. 먼저 턴테이블 받침이다. 원래는 단순히 대리석이지만 저렴한 가격의 놀라운 성능을 보이는 바이브라포드를 장착한다. 역시 소리가 향상된다. 이제는 매트다. 데논은 원래 두꺼운 고무재질의 매트가 따라온다. 나는 이것을 아주 오래전 정전기 방지 펠트 매트인 AM으로 교체한 바 있다. 최근 코르크가 좋다고 해서 코르크와 아크릴 재질의 매트를 구입해 보았다. 가죽도 있지만 이것은 포기하고. 소리를 들어 보니 AM 펠트가 가장 좋다. 이번에는 스테빌라이저이다. 오래전 오디오테크니카를 쓸 때는 소리가 너무 경질이라서 처분했고 중국제 수평기가 달린 것을 샀는데 이것도 소리가 경질이라 쓰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같은 중국제를 사게 되는데 그냥 색깔을 로즈골드로 사 보았다. 하지만 여기 달린 회전수 보는 눈금이 하자였다. 분명 60Hz를 주문했는데 눈금이 정지되어 보이질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니 인쇄는 60Hz이지만 실은 50Hz이다. 중국 얘들은 개념이 없다. 하긴 가격이 저렴하니 용서를 한다. 그래서 반품을 요청하니 그냥 나보고 가지라고 한다. 좋지!, 그리고는 다시 검은색으로 50, 60Hz 겸용으로 주문을 한다. 결국 은색, 로즈골드, 검은색 세 개가 되어 버리고 만다. 재질은 같고 색깔만 다른 것이다. 그런데 소리가 모두 조금씩 다르다. 로즈골드가 가장 좋다. 그래서 이것을 쓰기로 한다. 역시 소리란 미묘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103R 이야기다. 이 기종은 사자마자 파는 이들이 많다. 일주일 또는 개봉만 했다는. 왜 그럴까? 늘 궁금했다. 내가 써 보니 소리가 고에츠보다 좋은데. 103은 침압(2.5g)이 무거운 편이고 중요한 것은 이것을 창작하는 톤암의 자체 무게도 무거운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침압 무게만 맞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지지하는 톤암의 무게가 일반적인 것보다 무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침압을 주는 추도 수평을 맞추어 무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이면 무거운 추를 달아 맟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무거운 침압에 무거운 톤암 그리고 무거운 침압추를 걸어야 제 소리가 나오는 그런 바늘이라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컴플라이언스(바늘의 순응도)가 SPU(10mm/N)보다 낮아(5mm/N) 유효질량이 큰 톤암과 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소리나 나온다는 것인데 일리가 있는 소리다.
나는 우연히도 이 모든 것을 맞춘 것이었다. 더군다나 같은 회사인 데논 턴테이블이다. 67은 이 회사 제품 중 상급인데 톤암도 S자로 일자보다 길고 무겁다. 그리고 무게추는 모두 세 가지로 제공되는데 특히 가장 무거운 추가 제공되어 나는 이것으로 103에 무게를 줄 수 있었다. 보통의 턴테이블은 가볍고 무거운 것 두 가지만 제공되는데 67은 아주 무거운 것을 하나 더 주는 것이다. 사실 처음 살 때 이렇게 무거운 추를 어디다 쓸까 했는데 39년 만에 그 용도를 찾은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소리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마크 526 프리 앰프에 내장된 포노 앰프이다. 특히 게인을 높여 들으면 내가 가진 고가의 CDP를 훌쩍 넘은 고음질을 선사한다. 데논 103R + 데논 67L 턴테이블 + 마크 526 포노 앰프에 이루어 내는 소리는 너무도 좋기에 나는 가라드 301 함머톤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된다. 실은 어느 가게 구석에 처박혀 있는 301 함머톤을 보기는 했지만.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소위 다이렉트 드라이브 방식인 데논 67L이다. 특히 이 기종은 전자제어로 Wow & Flutter 0.008%를 자랑한다. 흔히 다이렉트는 벨트보다 소리가 나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특히 회전수가 일정하지 않은 벨트가 정말 좋을까? 아래 블로그를 잘 읽어 보기 바란다.
https://blog.naver.com/gt2000x/220720355205
가라드 301의 경우 오히려 회전수(0.03%)가 일정하지 않고 또 미세한 모터 진동이 있는데 이것은 오히려 듣는 이의 귀에 좋게 들리는 것은 아닐까? 소위 다소 왜곡된 소리가 더 좋게 들린다는 말이다. 나의 경우는 다이렉트 방식의 턴테이블인 데논에 데논 바늘을 끼운 것이다. 궁합이 나쁠 리가 없다. 아마 이런 조합도 좋은 소리에 일조를 했을 것이다.
데논 103 바늘은 위의 조건을 잘 구비한다면 고에츠를 능가하는 소리를 들려주는 명기라 말하고 싶다. 물론 가라드 301, 토렌스 124, 고에츠, SPU 등을 듣는 이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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