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이야기

지하철에서 사라진 클래식 음악

허당수 2026. 7. 21. 15:47

로베르토 미켈루치가 참여한 이 무지치의 1962년 녹음 (3LP)

 

 과거 2000년대 우리는 지하철 안내 방송에서 고급스럽게도 클래식을 들을 수 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환승역에서 들려오는 경쾌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 곡은 바로 비발디의 <조화의 영감>(전 12곡) 중 6번의 1악장이다. 제목은 모르지만 곡을 들으면 다들 아~ 그거 할 것이다. 말하자면 자연스럽게 뇌리에 각인이 된 것이다. 매일 지하철을 타면서 늘 듣던 음악이니 말이다. 
 이렇게 전국 모든 지하철에서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수준 높게. 그런데 2009년 클래식이 사라지고 국악으로 바뀌게 된다. 모든 지하철이 바뀐 것은 아니고 특히 <조화의 영감>을 들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조화의 영감>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들 좋다고 하는 클래식을 굳이 국악으로 바꾼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클래식은 저작권료가 없고 새로 만든 국악은 저작료가 있는데도 말이다. 누군가는 지하철 공사 사장이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아서다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바뀐 것이 하도 많은 음악 중에 왜 국악일까란 생각을 해 본다. 물론 국악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올해 2026년은 1876년(고종 13년) 강화도 조약 즉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된 지 150주년이 된다. 우리 대한민국 이전의 나라인 조선 근대화의 시발점이 되는 해다. 참고로 에디슨은 다음 해인 1877년 축음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300년 전인 1582년 규슈의 다이묘가 ‘덴쇼 소년 사절단’을 로마 교황청으로 파견한다. 이때 이들이 서양의 발전된 문물들을 가져오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구텐베르크 활판 인쇄기였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서양의 악기와 회화, 미술품 등등이다. 특히 악기는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1550년대 탄생한 바이올린으로 추정되며. 이 소년들이 음악을 배워 자신의 영주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일본은 이렇게 서양 음악을 일찍 받아들였고 나중에 메이지 유신(1868년)을 통해 본격적인 근대화를 이루면서 클래식 음악을 매우 애호하게 된다. 이에 종합적인 클래식 음악해설서를 만들었고, 이런 해설서와 감상을 통해 서양의 정신적 기반을 이해하고자 했다.
 한편 유명한 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국민의 정신을 계몽하기 위해 『학문의 권장』(1872년)이라는 책을 썼고, 무려 370만 권이나 팔리게 되어 사람들의 의식을 근대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일본 인구는 3,500만 명이었다. 말하자면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내면의 정신적인 발전도 병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근대화를 통해 일본은 세계 일류 국가 반열에 오르게 된다.
 2026년 현재 우리는 정말로 근대화를 이루었을까? 경제나 정치의 근대화는 이루었는지는 몰라도 사회나 문화는 아직 전근대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조선 시대 삶의 기준은 입신양명, 부귀다남, 수복강녕이었다. 혹시 출세나 돈을 목표로 삼고 있다면 전근대적인 소위 ‘후조선’ 사람이 되는 셈이다. 몸은 한국 사람이지만 정신은 미신, 무당 점, 운수 따위를 믿는 조선 사람인 것은 아닐는지? 근대화라는 것은 서구의 앞선 문명이고 이것의 바탕이 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클래식 음악 또한 각별한 가치를 지닌다. 클래식은 자신의 존귀함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 즉 자유와 평등을 일깨우게 되는 정신의 계몽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국악을 들려준다는 것은 혹시 전근대로의 회귀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앞서 말했듯이 국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며 그 쓰임의 용도가 다른 것이다.

 비발디 협주곡 <조화의 영감>의 원제는 "L'estro Armonico"로 변역을 하면 'estro'는 영감이나 착상 그리고 'armonico'는 화성이나 조화를 말한다. 그래서 종종 "화성의 영감"이라고도 하는데 그래서 나는 화성에서 온 영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보통 "조화의 영감"으로 번역한다. 곡은 바이올린이나 첼로의 다양한 협주곡 12곡을 모은 것인데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6번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말하자면 지하철에서 따로 6번을 선정했다는 것은 전문가의 입김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연주는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국내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곡의 명연주인 이 무지치(I Musici)였을 것이다. 그들의 연주는 모두 두 가지가 있는데, 피나 카르미넬리가 참여한 1983년 신녹음보다는 로베르토 미켈루치가 참여한 62년 구녹음 쪽이 더 훌륭하다.

두 장으로 이루어진 CD

 

 음반은 두 가지 연주 모두가 LP, CD로 나왔고 미켈루치 연주는 과거 낱장 3장의 LP로 발매되어 가장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과거 성음에서 발매한 LP는 구반(1970~80년)과 신반(1980~90년)이 존재한다. 음질은 대게 구반이 좋다고 한다. 추측건대 국내 시장 여건상 초반 물량인 500장이나 1,000장을 넘기가 힘들다 보니 처음 찍은 500장 정도가 초반이라 음질이 더 나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찍은 신반은 따로 스탬퍼를 만들지 않고 과거 것으로 다시 찍어 음질이 떨어졌을 것이다. 아래에 사진으로 구반과 신반 구별하는 법을 소개한다.

 가끔 이  <조화의 영감>을 듣노라면 과거 지하철에서 듣던 좋은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아래 영문의 회사 소개 글자가 작은 것이 구반
아래 영문의 회사 소개 글자가 큰 것이 신반
라벨이 붉은색이며 1972년 제작년이 표시된 것이 구반
라벨이 은색으로 1991년 제작년이 표시된 것이 신반
2LP로 발매된 <조화의 영감> 전 12곡 이 무지치, 미켈루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