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은 씨디 플레이어의 최전성기였다. 이런 시절 캘리포니아 오디오 랩(California Audio Labs)은 진공관을 채용한 씨디피 전문 업체로 유명했는데 2000년경 폐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이콘이나 DX1 그리고 템페스트 등이 소개되었고 특히 템페스트 2는 전원 분리형 진공관 씨디피로도 유명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 회사의 델타 트랜스포트와 시그마 2 컨버터를 거저 줍게 되었는데 지금부터 이 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처음 들어왔을 때 이 기기의 소리는 대단히 놀라웠다. 왜냐하면 내가 최고라 평가하여 오래 잘 쓰고 있는 아큐페이즈 75와 대등한 소리를 들려 주었기 때문이었는데 얼핏 들으면 더 나은 것처럼 들렸다. 또 처음에는 컨터버가 1분의 예열 후 동작한다는 것을 몰라 고장인 줄로 알았다. 하여튼 재미있는 많은 일이 일어난 잊을 수 없는 특이한 존재이다.
트랜스포트인 델타는 파나소닉 픽업 메카니즘을 사용한 것인데 문제는 리모콘이 없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있지만 내 기기는 없었다. 기기 버튼이 있지 않냐? 하겠지만 이상하게도 정지 버튼이 없어 너무 불편했다. 오래된 기기라 구하기는 힘들고 알아보니 어드컴 씨디가 동일한 픽업을 쓴다기에 학습 리모콘으로 복사를 할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유연히 국산 하나로 리모콘 기기 코드 목록에 이 기기가 등재된 것을 발견한다. 이런 기기의 리모콘 코드가 있다니? 놀라웠다. 아마도 당시는 이 기기의 지명도가 높았기에 리모콘 업체에서 코드를 입력했던 것 같다. 리모콘 값은 6만 원으로 비쌌지만(마크 레빈슨 리모콘은 50만 원이나 한다)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하나로 리모콘을 구입하여 모든 기능을 쓰게 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최근 한 가게에 이 델타 트랜스포트만 매물로 나왔는데 원래 리모콘이 있는 것이다. 설마 따로 리모콘만을 팔지 않겠지! 이런 경우 리모콘 가격은 본체 값을 훌쩍 뛰어넘게 된다.
한편 시그마 2 컨버터는 12ax7 진공관 한 알이 들어간다. 열어 보니 이름 모를 진공관이었는데 추정컨데 중국산이 아닐까 한다. 좋다는 것을 알아보니 텔레풍켄이 명관이라는 것이다. 이베이에서 한 알만 구입했는데 가격이 8만 원 정도로 무척 비쌌다. 하여튼 큰 기대를 갖고 잘 꽂아 소리를 들어 봤다. 명관이라는데 소리가 부드럽고 답답해 영 시원치 않았다. 에이 빼자! 관이 식기도 전에 확 빼버렸다. 어라~ 관에 텔레풍켄이란 글자가 훌러덩 벗겨지는 것이 아닌가 가짜군!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관이 식기 전에 손을 대면 구관들은 글자가 지워진다는 것이다. 오히려 요즘 관이나 중국제는 멀쩡하고. 헐~ 각인이 지워졌으니 팔아먹지도 못하겠네.
나는 진공관 전문점을 찾아가 뭐가 좋은지 물었다. 구관말고 요즘 나오는 신관 JJ 테슬라 ECC803S(롱플레이트) 호환관을 권했다. 가격도 저렴하여 선뜻 구입하여 꽂아 보았다. 소리가 아주 좋아지는 것이었다. 나중에 가게 주인에게 텔레풍켄보다 좋더라 했더니 나보러 "귀가 밝으시네요" 했다. 그래도 나중에 관에 미련이 남아 동일한 테슬라 골드관으로 바꾸려 하자 이 주인은 금 발랐다고 소리가 좋아진다면 모든 걸 다 발라버리겠다며 큰 소리를 친다. 그냥 쓰자. 관은 여기서 끝내자. 내가 무슨 장의업자도 아니고!
이번에는 뒷면의 단자들이 시원치 않게 보였다. 물론 고가의 기기조차도 단가 탓에 WBT류의 좋은 단자를 잘 쓰지 않는다. 나는 예전에 사 둔 포르테 프리에 장착했던 WBT가 있어 먼저 컨터버의 출력 RCA 단자를 바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디지탈 단자가 또 시원치 않게 보여 바꾸려 했지만 WBT는 구입 가격이 만만치 않아 그냥 저렴한 CMC로 바꾸었다. 미제다, 중국제다 뭐니 하는 CMC였지만 그런대로 쓸만했다. 어쨌든 뒤지만 모양새가 근사해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이제는 전원쪽을 볼까나! 두 기기 모두 전원스위치가 뒷면에 있었다. 이런 경우 보통은 늘 켜 놓으라는 것인데 이 스위치가 부실해 보였다. 전원 스위치에 따라서도 음질이 달라지기에 교체를 시도한다. 자그만한 스위치라 값은 얼마 하지 않았다. 일제, 국산 등등 서너 종을 구해다가 교체를 해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원래 것이 가장 좋았다.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소리는 좋았다. 그러면 순정(대만제로 추정)으로.
이번에는 인렛 단자다. 필터가 부착된 대만제다. 파워텍을 쓰니 필터는 필요 없지 하고는 후루텍으로 바꾸었고 나중에는 250원짜리 그 동원 인렛 dac-11로 바꾸었다. 그리고 휴즈를 살펴보니 90년대라 오리지날 리틀 휴즈가 꽂혀 있었다. 그냥 쓰기로 했지만 나중에 그놈에 미련이 생겨 하이파이튜닝 휴즈로 결국 갈았다.
전압은 90년대 나온 미국제라 115?볼트였다. 미국은 원래 117이나 120인데 115라니! 그냥 같은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찜찜해 파워텍에서 정확히 115볼트로 맞추었다. 기분일지는 몰라도 좋게 들렸다. 아니 정말로 좋아진다. 이제는 파워케이블이다. 분리형이다보니 케이블도 두 개나 필요했다. 그래서 저렴한 QED와 골든스트라다를 물렸다. 단자는 후루텍으로 해서. 그리고 나중에 QED는 체르노프로 바꾸었다.
이 기기는 분리형이라 디지탈 케이블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인켈의 번들용 오디오 플러스 인터케이블 한 선을 썼다. 소리는 나니까. 후에 이 케이블에 단자 교체, 가게에서 얻어 온 동축 케이블, 이 케이블에 단자 교체, 오야이데 510+Dh labs 단자, 오야이데 510+쉐도우 단자, 다시 얻어 온 동축 케이블로 만든 쿠랑트 케이블 이렇게 변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이 기기가 쿠랑트 케이블의 탄생의 주역인 셈이다. 고맙게도.
한편 인터케이블은 오디오 플러스 루씨드 은선에 WBT 단자를 달아서 썼고 나중에는 쿠랑트 인터케이블로 바꾸었다. 또 오래 쓸 요량으로 픽업도 여분으로 따로 구해 놓았다. 이런 여러 과정을 되돌아보니 내 기기 중에 이렇게 공이 많이 들어간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정말로 해 보고 싶은 짓을 다 해 본 것 같다. 마치 집착과도 같이.
자 이제는 소리 이야기를 할 차례다. 첫 인상부터 놀라운 음질이었는데 그것은 진공관 방식에 기인하는 것 같았다. 진공관 특유의 두툼한 질감이 좋았고 음량도 통상적인 것보다 조금 커 아주 시원스런 음감을 선사했다. 더불어 여러 튜닝을 통한 해상력의 증가가 두드러졌고 그래서 현재는 광대역의 호방하고 시원한 음색을 자랑한다. 물론 진공관의 특성을 간직한 채. 마크 레빈슨 NO 39L과도 비교해 들어 보았는데 고급스런 질감만 떨어질 뿐 오히려 고역은 더 맑아 마치 동급 기기로 들린다. 마누라는 캘리포니아 쪽이 더 좋다고 한다. 마치 캘리포니아처럼...
캘리포니아 오디오 랩 델타와 시그마 2 씨디피 외국의 평가도 좋은 편이고 가격도 발매 당시는 두 기기를 합해 1600달러 정도 했던 중상급 기기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회사지만 진공관을 사용한 좋은 음질의 디지탈 기기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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