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이야기

엘가 <사랑의 인사>

허당수 2019. 2. 17. 12:09

 

 

 

 

 음악적으로 열세인 나라 영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명곡이라면 역시 <위풍당당(Pomp and circumstance) 행진곡>(전 5곡)을 들 수 있다. 제목의 위풍당당은 잘못된 번역인데 원제의 'Pomp and circumstance'는 '화려한 의식'이란 뜻인데 두 단어의 고어에는 허례나 허식, 허황됨을 뜻한다. 원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텔로>에 나오는 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면 왜 '위풍당당(威風堂堂)'이 되었을까? 아마도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곡의 위엄과 당당한 분위기(특히 1번)를 반영한 음악적 상상력의 번역이라 하겠다. 혹시 해적의 나라에서 대영제국으로 성장한 조국을 빗댄 엘가의 은유가 아닐까 한다. 허세가 아닌 진정한 품위와 당당함을 떠올리게 되는. 특히 1번 행진곡은 에드워드 7세 대관식에 사용되었고 지금은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열리는 프롬나드 콘서트 마지막에 <희망과 영광의 나라>라는 가사를 붙여 영국인들이 애송하는 곡으로 자리한다. 이런 탓에 연주는 영국 지휘자들의 주류를 이루고 있고 특히 작곡가 자신의 연주가 남아 있어 그 역사적 가치를 더한다.

 이런 <위풍당당 행진곡>과 더불어 엘가의 유명한 곡이라면 <사랑의 인사(Salut d'amour)Op.12를 떠올리게 된다. 아마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 소품의 명곡이라 하겠다.

 이 곡은 그가 서른두 살 때 결혼한 9년 연상의 부인 캐롤라인 엘리스 로버츠가 <사랑의 미덕>이라는 자작 시를 선물한 답례로 헌정한 곡으로 <사랑의 말(Mot d'amour)> Op.13-1과 짝을 이룬다. 그런데 왜 하필 인사일까? 아마도 명문가 출신의 나이 많은 부인이라서 먼저 인사부터 하고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말은 혹시 청혼이 아니었을까 한다. 곡은 결혼하던 한 해 전 10월에 작곡 헌정하였고 다음 해 5월 결혼 그리고 10월에 악보를 출판했기 때문이다.

 이런 곡이다 보니 엘가의 부인을 향한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고 제목 또한 고상한 불어를 쓰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두 곡을 계속해서 들어 보면 이런 인상이 자연스레 다가오는데, 연주가들은 아쉽게도 <사랑의 인사> 한 곡만을 연주하거나 녹음하고 있는 상황이다. 두 곡의 연주를 나란히 들어 볼 수 있는 음반으로는 나이즐 케네디(EMI)와 리디아 모르드코비치(CHANDOS) 정도에 불과한데 특히 모르드코비치 음반에는 바이올린 소나타를 비롯하여 흔히 듣기 힘든 바이올린 소품인 <단식>, <봉헌>(최초 녹음)을 담고 있어 가치를 더하고 있다. 더불어 연주 수준 또한 높은 것인데 강렬한 음색의 진한 감성이 인상적이다.

 

 

 

 이런 <사랑의 인사>의 좋은 연주를 살펴보면 곡의 작곡 경위가 아내에게 받치는 사랑스러운 곡이다 보니 여류 주자에 의한 것이 많은 편이다. 앞서 말한 모르드코비치를 비롯하여 김지연, 미도리, 정경화, 쌔라 장 등이 좋은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김지연의 경우 데뷔 음반인 <보칼리즈>라는 음반에 수록하고 있는데 그녀 특유의 여리고 예쁜 미음으로 사랑스러운 감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한편 정경화의 연주는 <콘 아모레(Con amore>라는 음반 속에 담고 있는데 그녀가 아끼는 괴르넬리 악기로 녹음했다. 서른일곱 나이의 연주인데 왠지 모르게 다소 불안하고 소극적인 소리로 일관한다. 반면 쌔라 장은 열 살의 나이에 내놓은 '데뷔'란 음반(세계 최연소 기록)에 포함하고 있는데 거침없는 진행과 고역의 울림이 좋고 당당해서 사랑스러운 감정이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열 살짜리 얘가 사랑을 알 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감정의 뉘앙스가 예사롭지 않다. 말 그대로 천재만의 숨결이라 하겠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음반 내지에는 아홉 살로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쌔라 장이 1990년 생이고 91년 녹음이니 열한 살이 맞지만 쌔라 장이 미국인이라 생일이 지나지 않아 정확히는 열 살(10년 6개월)이 맞다. 그러면 왜 아홉 살이 되었을까? 아마도 부모가 쌔라 장의 나이를 한 살 줄여서 얘기한 것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그녀가 들려주는 사랑스러운 감정과 놀라운 바이올린의 소리이다. 더욱이 1/4 크기(원래 54cm보다 짧은 44cm 크기)의 바이올린 소리라는 사실은 거의 충격에 가깝다. 정경화조차도 혀를 내두를. 두 연주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두 곡은 실은 엘가 음악의 본질은 아니다. 인기가 많은 곡인 것은 사실이지만 높은 음악성을 보여 주는 그런 것은 아니다. 그의 명작이라면 역시 첼로 협주곡이나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수수께끼 변주곡> 등과 같은 고귀한 작품들이라 할 것이다. 하여튼 엘가는 영국의 척박한 음악 환경 속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영국의 위신을 세워 준 훌륭한 음악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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