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이야기

한글날의 슬픈 단상

허당수 2019. 10. 17. 06:53

 


 얼마 전 10월 9일은 한글날이었다. 그날 인터넷을 보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였다. 검색 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의 대문 글씨이다. 평소 같으면 "NAVER, DAUM"이라고 했을 것을 한글날을 맞이하여 "네이버, 다음"이라고 한글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이 한글은 다시 영어로 바뀌어 "NAVER, DAUM"이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10월 9일은 한글을 쓰는 날이군! 365일 중 하루만 한글을 쓰고 나머지는 영어를 쓰는 날인 셈이다. 그래서 한글을 쓰는 날로 따로 국경일로 지정한 것이구나.

 훈민정음 상주본이라는 것이 있다. 정확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인데 한글 사용 설명서이다. 원래는 간송본만 있었는데 상주본이 하나 더 발견된 것이다. 어떤 이가 상주의 한 고서점에서 샀다고 하는.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산 이가 도둑으로 몰리고 나라에서는 가치가 1조라고 떠벌리고 이걸 강제로 빼앗으려고 하고 그래서 오랜 시간 개인과 국가가 소송을 통해 다투었고 결국 국가가 승소한 일.

 그런데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한글을 쓰지도 않은데 왜 한글 사용설명서가 필요한 것일까? 물론 학자들은 연구에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간송본(안동본)이 있지 않은가? 왜 굳이 상주본을 가지려 하는 것일까? 그러면 간송본은 왜 가지려 하지 않을까? 둘 다 개인이 돈 주고 취득한 것인데 굳이 상주본만 빼앗으려고 하는 것일까? 나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글을 쓰지도 않은 나라에서 그것도 정부가 개인이 돈 주고 사는 책을 강제로 가지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소중하다면 왜 나라가 직접 나서서 진작에 그 상주의 고서점에서 사지 않았을까? 당연히 한글을 쓰지 않으니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개인이 가지고 있을 꼴을 보기 싫어 강제로 빼앗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법적인 것을 잘 모른다. 그저 한글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고 서글플 따름이다. 백 년 후에는 우리나라에서는 한글과 우리말을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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