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이야기

마랑재와의 소중한 인연

허당수 2018. 11. 3. 17:31


 나는 과일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시과를 제일 좋아한다. 영국에서는 하루에 사과 한 개를 먹으면 의사와 멀어진다란 말이 있을 정도인데 그래서 난 사과를 많이 먹은 편이고 아예 상자로 대놓고 먹은 지 이미 오래다. 예전에는 아파트에 장이 서 그곳에서 상자 채로 사 먹었지만 그리 싸지 않은 것 같아 여러 군데를 알아 보았지만 고만고만하였다.
 나중에는 가락동 시장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곳도 별로 싸게 파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그곳의 노점상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여러 곳에서 싸게 준다고 나를 꾀었지만 역시 비슷한 가격이었는데 눈에 띄게 허리가 심하게 굽은 한 할머니가 파는 곳이 다른 곳보다 제법 쌌다. 노점상이라 상호는 없었지만 자칭 '토마토 할머니'라 했다. 토마토가 전문인 모양이지만 과일도 같이 팔았다. 그런데 사과 값이 싼 것에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물건 생김새가 좀 그런 것들을 파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못난이(B급) 사과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생긴 게 저래도 맛은 있다라 하셨다. 사과 맛을 잘 모르는 지라 값이 싸기에 사 보았고 할머니 말마따나 제법 맛이 있었다. 결국 그 할머니 가게를 계속해서 이용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예 골수 단골이 되었다.


 나로서는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을 새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오히려 번듯하게 생긴 과일들이 실속이 없다는 것도 나중에는 알게 되었다. 물론 다 그 할머니 덕분이다. 그러기를 한 3년은 그곳에서 사과를 대놓고 먹었을까? 추운 겨울날에도 할머니는 늘 자리를 지키셨고 무거운 사과 상자를 번쩍 번쩍 드는 노인네답지 않은 놀라운 힘도 종종 보여 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따님이란 분이 나오셔서 일을 거드셨는데 하루는 어머님이 이제는 일을 그만 두시고 시골로 내려가 편하게 지내실 거란다. 헐 사과를 잘 먹고 있는데 또 어디서 사과를 사야 되나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하지만 할머니가 편하게 여생을 보내실 거란 말에는 다행이다 싶었다. 얼마 안 있어 할머니는 일을 그만 두셨고 따님은 평창으로 가실 거라고 하셨다. 나는 따님과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나중에 할머님을 찾아 뵙겠다고. 이렇게 할머니와는 인연은 차분하게 멀어지게 되었다. 좋은 기억과 추억을 뒤로 한 채.


 한 3년이 더 지났을까? 가끔씩은 사과를 다른 곳에서 사 먹을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나곤 하였다. 물론 할머니가 알려 준대로 늘 B급 사과를 잘 먹고는 있었지만. 올 가을이 너무 성급히 깊어져 한기를 느끼게 되었던 지난주 그러니까 10월 마지막 일요일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휴일에는 차량이 많아 나들이를 하지 않던 터라 비가 오니 차가 없겠지 하고는 미루던 할머니를 뵈러 평창행을 갑작스레 감행하였다.

 예상대로 비가 제법 쏟아지니 차량은 훨씬 한산했다. 그런데 맞은 편의 올라 오는 차량은 엄청 많았다. 오는 길은 각오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내려갔다. 네비에 주소를 찍고 갔고 시골 동네의 외길로 들어서자 목적지에 도착은 했다는데 그냥 덩그러니 길 한가운데다. 역시 멍청한 네비는 영 믿을 것이 못된다. 결국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불가, 너무 산 속인가 보다. 그래서 길 폭이 넓은 곳을 찾아서 가 차를 돌려 다시 마을 밑으로 내려와 전화가 되는 곳에서 다시 걸었더니 우리가 오던 길이 맞다고 하였다. 그 외진 길이? 하여튼 말대로 다시 올라가니 정말로 깊은 곳에 할머니가 있다는 팬션이 눈에 들어 왔다. 비는 촉촉이 계속 내리고.

 나는 한 눈에 할머니를 알아 볼 수 있었는데 그 심하게 굽은 허리의 노인데가 우산을 여러 개 챙기시면서 마중을 나오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를 세우고 너무 반갑게 할머니를 뵈니 순간 울컥했다. 이런 삶의 희열을 느껴 본 지가 얼마더라 했다.

 그간 할머니는 있었던 일을 보따리처럼 펼치며 말을 이어가셨다. 노점에는 일을 할 때보다 건강이 오히려 더 나빠졌다, 시력도 떨어졌다. 허리도 아프다, 심심하다. 등등 그래서 일까 할머니가 예전처럼 노점에서 장사를 하시는 것이 더 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인이 될수록 편하게 쉬기 보다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터라.


 아드님을 따라 팬션 구경을 하니 할머니가 나중에 꼭 한 번 오란다. 나는 그럴 거라 했다. 시간이 흐르고 산속이라 어둠이 일찍 내렸고 그래서 자리를 일어나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냉장고를 열어 하나둘씩 무언가를 계속해서 내민다. 만두, 떡, 사과, 토마토, 감자 부침개 등등 마치 시골집에 내려온 아들에게 바리바리 싸주시는 것 같았다. 특히 압권은 감자였는데 무려 20킬로였다. 아이구 들기도 힘드네!

 꼭 다시 다음에는 자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는 할머니와 헤어졌다. 나는 할머니의 나이도 이름도 자식들이 뭐하는 지를 들은 적이 없다. 그냥 내 뇌리에는 좋은 할머니가 전부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할머니도 모른다 내 사는 곳도 이름조차도. 물론 나이로 보면 할머니가 아니라 어머니뻘이지만 그냥 나는 할머니가 좋다. 나의 어렸을 적 희미한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외할머니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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