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영국에서 만들어진 가라드(Garrard, 1915년 설립)라는 턴테이블이 있다. 70년 이상 지났으니 사라졌을 법한 물건이지만 오히려 전성기를 구가할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것도 엄청난 고가로. 그만큼 지금의 감각에도 소리가 좋다는 것인데 과연 그렇까? 혹시 과거의 향수로의 동경이 만들어낸 환상? 아니면 정말로 지금의 기술로도 어려운 좋은 소리일까?
가라드 301는 1953년 생산을 처음 시작하여 65년까지 나왔고, 65년에는 401이 나와 76년까지 생산하였다. 약 6만 대 정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 최근 2018년에 SME 소유회사가 다시 가라드를 설립하여 301을 생산하였다. 그러나 가격이 2만 3천 달러로 너무 고가라 외면 받은 바 있다.
나도 하도 궁금하여 그 궁금증을 풀려고 굳이 살 필요가 없는 가라드를 구입하게 된다. 무려 40년 동안이나 아무런 불평 없이 듣던 데논 67L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67L+103R의 절묘한 매칭으로 인해 환상의 소리라 생각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가라드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물론 301이다. 단골 가게에 물건이 있었다. 멋진 플린스에 오토폰 RMG 309 복각 톤암에 장착되어 있었다. 가격은 9백만 원~ 헐, 이 가게에서는 함머톤 검정 플린스를 무려 1,400만 원에 판 적이 있었다. 턴테이블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집에도 역시 가라드가 많았는데 가격은 거의 7백만 원대를 상회한다. 정말 비싸다. 인기가 많으니 그러려니 했다. 애호가 장터를 뒤져 본다.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다 5~6백 사이를 오간다. 2~3백 짜리도 있다. 가게보다는 저렴했고 장터에서 잘 나가는 물건은 아니었다. 나는 톤암을 빼고 4백에 멋진 플린스 301을 보게 된다. 지방이다. 전화를 해 지금 가겠다고 하니 오늘은 시간이 안 된다고 한다. 잠시 보류.
다시 장터를 뒤적이다 저렴한 401을 보게 된다. 플래터 안쪽 표면의 칠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 낭려하다. 그래서 값이 싸구나 했다. 하지만 301보다 오히려 좋다는 소문이 있고 허름하지만 플린스를 끼워 준다기에 보러 간다. 하지만 예약자가 있다 했다. 다시 얼마 후 판매 완료가 되지 않아 연락하니 예약자가 구매 취소했다고 한다. 아마도 칠이 떨이진 것에 정나미가 떨어졌나 했다. 가서 보니 참혹했다. 그래도 무엇에 홀린 듯 덥석 구매하게 된다. 덤으로 마데 차이나 주파수 변환기(인버터)와 일제 60Hz 풀리가 있었다. 물론 톤암은 없다. 수리할 각오를 하고 가지고 오게 된다.
하지만 톤암이 없으니 들을 방법이 없다. 장터를 보니 테크닉스 SL-120인데 턴테이블은 고장이라 톤암 SME 3009 가격만 받는다는 물건이 지방에 있었다. 충청도지만 갈만 했다. 차를 몰았고 얼른 집어 오게 된다. 물건이 엄청 험하다. 더스트 커버는 없고 발도 하나는 제짝이 아니다. 톤암 상태는 글루건으로 떡칠이 된 허름했지만 덤으로 데논 103 중고 바늘이 있었다.
톤암을 분리하여 받침대를 그대로 플린스에 올려 대충 소리를 들어본다. 소리가 굵직하고 걸쭉하다. 데논이 오히려 심심하게 들린다. 이래서 가라드 가라드 하나 싶었다. 선이 굵은 힘찬 음색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50Hz 풀리에 주파수 변환기 소리였지만 인버터 특유의 험 때문에 60Hz 풀리로 교환하여 들어본다. 역시 좋았다. 하지만 회전 소음이 크고 모터 열도 많이 나서 정비를 해야겠다 싶었다. 어디서 할까나? 유명하다는 용산 가게와 부천이 있었다. 거리는 멀지만 부천에 끌렸다. 부천에 가니 먼저 게이샤(케샤) 커피를 권한다. 헐, 그 유명하다는 게이샤 커피, 그래서 흔쾌히 수리를 의뢰했고 수리는 무려 20일이나 걸렸다.
드디어 소리를 들어 본다. 기존과는 다른 해상력 높고 맑은 소리가 난다. 물론 60Hz 풀리 소리다. 다시 50Hz 풀리로 바꾸고 주파수 변환기를 통해 들어 본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난다. 기존에 어둡고 둔탁한 소리가 아닌 고급스럽고 투명한 해상력 높은 소리가 난다. 더불어 저역도 묵직하지만 맑은 저역의 정숙함이 단연 돋보인다. 과연 이게 진정한 가라드의 소리란 말인가?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이 있다. "가라드는 집에 가지고 갈 때까지만 즐겁다" 무슨 소리냐 하면 집에서 들어 보면 그르렁하는 저역이 울림이 탁하게만 들리고 그것이 고민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60Hz 풀리를 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가라드에서는 60Hz 모터를 만들지 않았다. 다만 미국 수출 시 60Hz용 풀리를 끼웠고 플래터만 60Hz 스트로보스코프를 제공했을 뿐인데, 이게 60Hz용으로 와전된 것이다.
60Hz에 50Hz 모터를 걸면 속도는 20%나 증가하고 그것을 수정하려고 풀리를 얇게 만들어 궁여지책으로 끼우는 것이다. 이런 풀리는 두께가 얇아 변형이 쉽게 생기고 국내에서 가공된 경우 표면 거칠기도 안 좋아 소리를 더욱 탁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런 소리를 좋다고 들었던 것인데 그것이 오히려 묘한 매력을 풍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주파수 변환기를 통해 들었던 소리는 이런 것이 결코 아니다. 심하게 말해 아주 고가의 씨디피에서 나오는 세련되고 해상도 높은 투명한 소리다. 물론 특유의 두터운 질감과 저역의 묵직함도 유지하면서. 변환기를 연결하면 원래 50Hz에 맞춘 것이라 낮은 제속도를 내고 회전수도 낮아 진동이 줄어들어 해상력이 증가된다. 원래 설계대로.
주파수 변환기는 아날로그 클리닉에서 만든 아큐라, 호미랩에서 만든 FCU, 미국 제품인 KCC 그리고 내가 쓰는 가라드 변환기 등이 있다. 가라드는 가라드에서 만든 것은 아니고 가라드 소모품 사이트인 클래식 턴테이블 컴포니에서 만든 것인데 구입하여 내부를 보니 모두 중국제 부품이다. 혹시 마데 차이나? 그런데 희한한 것은 220V 콘센트가 Gusi Electric이라는 러시아제이다. 검정 노브는 영국제이다. 뭐지? 상자각에는 "Made in England"라고 크게 쓰여 있는데. 나름대로 추측해 보자면 영국에서 설계하여 러시아에 의뢰하였는데 러시아에서 다시 중국에 조립 의뢰를 했다? 내부를 보면 기분이 좀 그렇다. 더군다나 이상한 것은 입력의 접지는 연결되어 있는데 최종 출력 콘센트에는 접지가 놀고 있다. 그래서 듀얼런트 주석선을 이용하여 따로 접지를 해 주니 소리가 한결 좋아진다. 더불어 집에 남는 용량이 맞는 니치콘 콘덴서로 두 개를 교체하니 고역이 더 살아난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사진의 검정색 노브를 분해해서 보면 안쪽에는 England라고 되어 있다. 너는 누구냐?
이런 주파수 변환기를 쓰면 가장 좋은 것이 플래터 외부에 있는 스트로보스코프를 통해 시시각각 회전수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 들어온 것은 50Hz 플래터가 대부분이라 회전수를 볼 수 없다. 그러나 변환기를 쓰면 보인다. 속이 다 후련하다. 그리고 자석 브레이크를 통해 회전수를 조절하는 것(Eddy Current Braker)을 최소화하고 전압이나 주파수로 회전수를 미세 조정할 수 있다. 결국 풀리는 편법이며 소리도 좋지 않다. 하지만 가게에서는 '상관없어요' 한다. 없긴 상관있어!
다음은 인가 전압이다. 가라드에는 표시하길 100 or 200V, 50 or 60Hz using correct pulley라고 적혀 있다. 어떤 표시(주로 301)는 100~120 or 200~240V이다. 뭐가 맞는 전압인가? 영국은 과거 240V 50Hz를 썼다. 지금은 230V로 변경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모터는 50Hz 한 가지만 만들었고 전압은 외국 수출을 대비 두 가지로 나누었던 것이다. 물론 가용 범위를 넓게 잡고. 일본 100, 미국 117, 우리나라 110, 기타 230이나 240V.
일설에는 일본 사람들이 가라드를 제일 좋아하는데 그것은 100V에 써서 소리가 좋은 탓이라고. 내가 결선을 바꾸어 100V에 연결하니 소리가 차분하고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220V 때와는 달리 박진감이 덜하다. 결론은 220V가 해상력이나 박진감이 좋아 개인적으로는 220V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아마 일본에서 좋다는 것은 50Hz 지역에서 즉 도쿄 등의 동부 지방에서 나온 얘기로 추측된다. 참고로 일본 서부 지방(오사카, 교토)은 60Hz이다.
그리고 전원선은 따로 장착해 주어야 하는데 플린스에 인렛 단자를 설치할 수도 있고 아래 그림과 같이 직결할 수도 있다. 나는 벨덴 19364 선재로 직결하였는데, 인렛 단자를 설치하면 다양한 전원케이블을 쓸 수 있지만 단자로 인한 손실이 있기도 하다.
가라드 변환기는 특이한 것이 있다. 이 기기는 주파수를 조정할 수 있고 또 출력 전압도 조절이 가능하다. 더 특이한 것은 무부하 상태로 220V에 놓고 가라드(12W)를 연결하면 25V 정도 전압 강하가 일어난다. 하지만 다시 조절 노브로 220V에 맞추고 소리를 들으면 뭐가 거친 느낌이 나서 개인적으로는 변환기 전원은 220V에 걸고 출력 전압을 195V 근처에 맞추면 가장 좋은 소리가 나는 것 같다. 물론 주파수는 50Hz에 고정하고. 자신이 들어서 가장 좋은 음색으로 맟추면 될 것이다.
턴테이블 받침대 즉 플린스(Plinth, 주추대)는 워낙 많은 종류가 있어 어떤 것이 가장 좋다 말할 수 없다. 각자의 취향이다. 다만 적층 자작나무가 가장 좋지 않다는 말도 있다. 톤암은 롱암인 오토폰 309가 좋다고 하는데 워낙 경우 수가 많아 직접 해 보는 수밖에 없다. 다만 309 복각 톤암은 추천하지 않는다. 기술이 있는 사람은 남의 물건을 베끼지 않는 법이다. 바늘은 좋은 것이 많지만 나는 그냥 데논 103으로 만족한다. 데논 67에는 103R이지만 가라드에는 103이 어울린다. 가라드 401을 검청용으로 사용한 스가노옹의 고에츠 로즈우드도 써봤지만 음색이 어두워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혹시 음색이 어두워 해상력이 좋은 401을 쓴 것은 아닐까? 참고로 고에츠는 등급이 없고 검청해서 서열만 나누어 놓은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팔지 않고 애호가 지인에게만 특별히 준 것이고. 그리고 가장 많이 추천하는 오토폰 SUP는 구형이 좋다고 하나 신형이 고역 해상도가 더 좋아 추천할 만하다.
결론이다. 진정한 가라드 소리를 듣고 싶으면 무조건 주파수 변환기를 써서 50Hz 풀리는 거는 것이며 전압은 영국 전압인 230V(220V)를 인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칠고 투박한 그러면서도 걸쭉한 예스러운 소리를 원한다면 그냥 60Hz 풀리는 써서 그르렁하는 저역을 같이 듣는 것이다. 물론 취향의 차이로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단연 변환기 쪽이다. 그리고 마지막 가라드는 무려 50년 이상 된 것들이라 대부분 정상인 것이 없다. 반드시 정비를 해야 제소리가 난다. 정비를 하지 않으면 그냥 골동품 소리다.
사족 301은 검정, 미색(흰색인데 오래되어서 변색?), 함머톤, 구리스, 오일 구별을 한다. 물론 미세한 차이(모터 등)는 있다. 험머톤(구리스만 있다)가 가장 진한 소리가 난다고 한다. 과연 진정한 가라드의 소리를 무엇일까란 생각을 곰곰이 하게 된다.
오디오는 구라로 시작해서 구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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